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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Sep 26. 2022

인도에서 이불을 샀습니다.

인도 조드푸르

우리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귀를 기울인다.
마치 어느 날엔가는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조드푸르 역에 새벽 6시 내려 선불 오토릭샤 부스에 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주위를 맴돌다가 오토릭샤를 잡았다.

역에서 숙소까지 가까운 게 분명하지만 짐을 들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른 릭샤와 흥정하기도 귀찮고.

한시라도 빨리 숙소로 이동해 쉬는 싶었다.

추천 가격으로는 움직일 릭샤가 없어 여행자 가격으로 이동했다.

검은 두건을 쓴 릭샤 아저씨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있던 바우처를 보더니 숙소를 잘 안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려준 곳은 다른 호텔.

내가 아니라고 되묻자 앞 골목을 가리켰다. 

골목 다섯 번을 꺾어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릭샤 탈 때부터 손으로 산을 만들어 업 업 하더니.

숙소가 메헤랑가르 성 근처에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좁은 폭의 골목을 걷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100센티미터 폭으로는 바닥 오물들을 피할 길이 없으니까.

새벽이라 제법 깨끗하다고 속으로 칭찬하며 숙소까지 돌돌돌 짐을 끌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할아버지가 맞아 주셨다.

골목골목을 지나온 나에게 더욱 험난한 방의 위치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입구 계단을 지나 1층에 올라서면 그다음부터 또 굽이굽이 계단이었다.

새벽인데도 방을 내준 건 다행이었다.

방은 깨끗하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창 밖으로 하얀 옥상과 파란 창문들이 미로처럼 보였다. 

그 뒤로 굽이굽이 성의 황색 벽이 우뚝 서 있었다.

옥상에는 검은 물탱크 옆에 빨래가 널려 있었고 사람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세수만 하고 오믈렛을 먹으러 나섰다.

아침에 칭찬했던 골목들이 모두 똥과 침과 오물들로 지저분했다.

새벽의 어스름한 빛이 더러움을 감춰주었구나.

보았더라면 결코 캐리어를 끌 수 없었던 길.

덕분에 편하게 캐리어를 끌었으니 좋아해야 할까 아님...

저녁에 캐리어 바퀴를 닦아야 할까?


다음 날 새벽같이 나서는데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어딜 가는 거지?"

"빌리지요."

"어, 산책 가는구나."

빌리지 투어였지만 영어가 귀찮아 미소 지었다.

밤 기차 때문에 캐리어와 배낭을 맡기며 물었다.

"제 짐 안전한 거 맞죠?"

"그럼 그럼 안전해. 우리 가족만 있어."

뒤돌아 또 물었다.

"세이프?"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끄덕.

내 영어는 중학교 1학년 정도라 여기까지.

빌리지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오후 2시. 

밤 10시 기차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시장 구경을 했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30분을 채우기 힘들었다.

시계탑 주위 리어카에서 사탕수수 주스도 한 잔 주문했다.

압착기가 너무나 더러워 마시는 척만 했다. 

하릴없이 걷는데 거리에 진열된 코끼리 이불이 괜찮아 보였다.

두리번두리번. 가게는 계단 아래 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밖에 걸린 이불을 보여달라고 하자 아저씨가 모르겠단다.

난 다시 올라가 사진을 찍고 내려와 보였다.

아저씨는 자기도 찍어달라며 하며 포즈를 잡았다.

다른 자세로 몇 장 더 찍으라고 한다. 가게도 여러 장 찍으라고 한다.

사진을 다 찍고 나자, 이불은 없다고 했다.

비슷한 이불을 찾으니 노란 코끼리 이불을 보여주었다.

가격이 5000원 정도라 하나 샀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려니 부피가 엄청났다.

이불을 사는 건 여행 마지막 날에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숙소 옥상 테라스 식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야간 이동이 있는 날 무얼 사 먹기는 곤란했다. 화장실을 가야 해서.

약간 덥고 바람이 느껴지는 나른한 오후였다. 

오래 앉아 있기 미안해 짜이 팟을 시켜놓고 졸았다.

한 시간 반을 달게 잔 후 기차역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후 5시 반이니 시간은 많았다.

남은 짜이를 후루룩후루룩 마시고 1층에 내려와 보니 짐은 얌전히 있었다.

근처에 작은 동굴 같은 곳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숨을 쉴 때마다 몸이 덜덜덜 떨리고 덜컹거렸다.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었고. 

내가 짐을 정리하고 세수할 물건들을 꺼내자 

할머니는 의자를 내와 동굴 밖으로 나오셨다.

그러곤 나를 관찰하셨다.

흔들흔들 덜덜덜 덜컹덜컹 후르르- 쉴 새 없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난 처음에 그 할머니를 경계했었다. 짐을 꺼내갈까 봐.

그러나 숨쉬기도 힘들어하시는 노인이 무얼 훔칠 수 있겠는가.

나는 할머니의 시선을 느끼며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할머니가 물으셨다. 

"비누를 안 써?"

난 작은 튜브를 보여주며 비누라고 말했다.

"어, 여행용이구나."

할머니는 지루한 일상에서 벋어나 나를 관찰하고 내 짐을 지켜 줄 요량이셨나 보았다.

얼굴에 뿌리는 미스트를 할머니의 얼굴에도 뿌려주었다. 웃으셨다.

페이스 오일은 거절하셨다.


밖은 이미 깜깜해지고 있었다.

짐을 메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번엔 캐리어를 끌지 않고 들고.

투어로 모래가 날리는 들판을 돌았고 땀을 흠뻑 흘렸다. 

샤워 없이 세수만으로 기차에서 잠을 제대로 잘까 걱정했다.

잠은 잘 잤다. 그러나 새벽부터 끈적끈적. 자면서 꿉꿉했다. 

잠이 깨자 할머니의 흔들흔들 덜덜덜 덜컹거리며 숨 쉬는 소리가 

나에게도 곧 닥칠 일이 되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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