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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Sep 25. 2022

자이푸르 기차 웨이팅 룸의 악몽

인도 자이푸르

자신의 모순을 확인하는 데 길이 들어서
작은 신은 곧 다시 쾌활해지고 정말로 무관심해졌다.
작은 신이 보인 덧없는 호쾌함의 근원은
자신의 불행이 비교적 하찮다는 것이었다.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난 왜 웨이팅 룸에 네 시간이나 일찍 갔을까?

조드푸르행 기차가 밤 12:20에 있기 때문이었다.


자이푸르에서 한국 친구들이 생겼다.

함께 암베르 성에 올랐고. 

언덕 난간에 앉아 핑크 도시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 해를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도 이동할 수 있어 좋았고.

기차역으로 가는 시간을 늦출 수 있어 더 좋았다.

대기 줄이 긴 식당을 발견. 같이 저녁을 포장했다. 

일행이 머무는 방으로 돌아왔을 때,

한 명이 아파서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놀란 일행은 아픈 친구가 먹을 오렌지 주스를 사러 갔다.

나는 샤워를 시작했다. 

까치발로 높이 매달린 온수기를 이리저리 건드려 

마침내 뜨끈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돌아온 일행이 저녁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뜨거운 물을 다 쓴 것 같아 찔렸다.

샤워로 기분이 좋아져 기차역으로 가는 릭샤 맨에게 돈을 후하게 지불하고

열차 웨이팅 룸으로 향했다.

웨이팅 룸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보여준 바우처를 꼼꼼히 확인하더니 아무 말 없이 시계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벽에 걸린 노티스를 가리켰다.

그 알림에는 기차 시간 두 시간 전부터 이용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내가 가려는 웨이팅 룸은 1등석과 2등석을 분리해 만든 1등석 레이디 룸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낀 할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없이 거만하고 불친절하게 종이를 던졌다.

작은 권력에 목매어 거들먹거리는 손짓과 표정으로 힘을 과시하는 관료였다.

나는 자존심을 구겨 잠시 미소를 띠며 안 되겠냐고 물었다.

거만한 노인네는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생각에 푹 빠져 더 냉정하고 거만해졌으니 못된 늙은이!

난 웨이팅 룸 바로 밖에서 꼬박 1시간 45분을 기다려 입장할 수 있었다.


기다리며 포장해온 케밥 반쪽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치킨 케밥을 시켰는데 양고기가 포장되어 나왔다.

쥐가 숨었던 기둥에 앉아 웨이팅 룸을 노려보며 나머지 반쪽을 먹었다.

삼분의 1쯤 남았을 때 개가 나타나 가련한 눈빛을 보내며 내 앞에 앉았다.

먼저 고기를 던져주고 빵은 먹을지 몰라 조금 던져주니 고기만 먹었다.

남은 걸 포장해온 쿠킹호일에 꼭꼭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좀 전의 개가 그걸 찾아내어 솜씨 좋게 뜯었다. 

고기 냄새가 배어 있는 빵을 맛보더니 그냥 떠났다. 뒤처리를 안 하고.

빵 쪼가리와 호일들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꼭 내가 버린 쓰레기 같았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던 과감한 쥐가 걷던 발에 걸리자 풀쩍 뛰어올랐다. 

쪼르륵 내가 엉덩이를 붙이는 있는 기둥 뒤에 숨었다.

기둥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짐을 치우고 쥐가 도망가기를 기다리며 길을 터주었다.

쥐가 가는 길을 눈으로 따라가 보니 수도꼭지 앞이었다.

물을 마시러 간 것이다.


딱 시간 맞춰 찾아 간 웨이팅 룸 앞에는 아직 그 할배가 더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바우처를 다시 뜸 들이며 한참을 살피더니 

아래 종이에 무언가를 적으라는데 그 행동이 몹시 고압적이고 못됐다.

할배와 손이 스치는 게 싫어 이리저리 피하는 줄도 모르고.

손가락질을 하며 나를 조종했다.

못 쓴 칸이 나오자 할배는 내 손에서 펜을 낚아채어 신경질적으로 무언가를 썼다.

나도 보란 듯이 내 바우처를 낚아채는 소심한 복수를 했다.

웨이팅 룸에 들어와 보니 너무나 허름했다.

딸린 화장실에 쥐가 득실거렸다.

쓰레기통 위에 쥐가 세 마리, 밑에 두 마리 그리고 뛰어다니는 쥐가 또 있었으니.

쥐가 화장실에서 나와 웨이팅 룸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얼쩡거렸다.

내가 바닥에 발을 구르자 화장실로 쏙 도망갔다. 곧 슬금슬금 기어 나왔지만.

자는 사람들에게서 음식 냄새가 나는가 보았다.

1시간 전에 먹었던 양고기 케밥 냄새가 손에 가득한데 난 차마 씻으러 갈 수가 없었다.

손 씻기를 포기하고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데,

서양 관광객들이 화장실에 갔다가 꺄-악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볼일을 다 보고 나왔다. 어쩔 수 없었겠지.

난 짐을 높은 탁자에 다 올려놓고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런 곳을 기다려 들어와야 했다니.

생각할수록 그 노인네의 거만과 더럽고 초라한 1등석 웨이팅 룸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이곳은 인도니까.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 또 엉뚱한 기적이 있으니까.

일행이 생겨 샤워까지 마치지 않았던가.

좀 지나자 남자 청소부가 들어왔다.

바닥을 대충 닦더니 화장실을 청소했다.

쥐가 싹 사라졌다.

가만 보니 밤 11시부터 쥐들의 만찬 시간이었다.

저녁으로 먹은 음식 부스러기들이 쓰레기통에 잔뜩 쌓여 있는 시간부터

청소부가 청소하기 바로 전.

천장에는 하얀 팬이 돌고 있고, 

쥐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방을 가로지르고, 물을 마시는. 

그래 여기는 인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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