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맘 Jan 24. 2022

2.미국? 한국? 결정의 순간

바이옵시를 한 두 개의 조직 중 하나가 암으로 판명이 되고, 그 전화를 받은 3일 후 유방외과의사를 만나는 예약이 잡혔다. 아무리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다고 해도 내 모국어는 한국말이고, 게다가 어려운 의학용어를 의사에게 듣고 내가 질문을 하려면 미리 준비가 되어야 할 듯해서, 병원에서 보내온 검사결과지를 놓고 네이*와 구*을 총동원하여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친절한 간호사의 말대로, 두개의 종양 중 하나는 Carcinoma, 크기는 1.7 밀리미터, 다른 하나는 Benign 이었다. 다행히도 세포분화도를 비롯한 암세포의 성질이 아주 나쁘진 않아 보였다.

그래도... 암 은 암이다... "암"이라는 한마디로, 난 졸지에 암환우 가 되어버렸고, 수술은 피해 갈 수 없으며 수술 이후의 치료도 당연히 생각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에서 하느냐 미국에서 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아이들이 기숙사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한참 필요한 때이기에 어렵게 남편과 몇 년의 기러기 생활을 결정한 터였고, 이곳으로 와서 일 년 남짓 지나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야말로 암담한 시간이 계속되다가 이제 좀 여러 가지로 상황이 나아지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의사를 만나기 전에 내가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 한국의 시차를 계산해서, 한국에 있는 의사 친구에게 결과지를 찍어 보내고 의견을 물었다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겠지?"라고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간단히 한 줄만 적어서 보냈는데

친구에게서 바로 돌아온 답은 "응, 안 좋으니까 빨리 들어와라, 조직검사 슬라이드 다 받아오고"

"... 많이 안 좋은 거야? 초기이고 크기도 작아서 난 그냥 여기서 수술을 할까 싶어서..."

"수술하기 전에 다른데 문제없나 다 봐야 하고, 수술 후에 추가 치료를 할 수도 있어"

"간단한 수술이라고 입원 없이 Outpatient로 한두 시간 남짓이면 끝난다는데..."

"간단하지 않아, 일단 암이면 간단할 수 없어"


친구의 마지막 말이 머리를 띵~하고 울렸다. 암이면 간단할 수 없다...

갑자기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로 가야 하는구나...

10월 말에 잠시 혼자 다녀오려고 했었는데, 일정을 앞당겨 어서 빨리 서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다시 혼란스러워졌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단 모든 레슨 스케줄은 취소하고 자가격리 면제 신청서류 작성 및 비행기표 일정 변경을 하느라 꼬박 하루를 보내고는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와 잠자리에 누웠는데, 하루 사이 알아보고 들은 모든 정보들이 다시금 재생되며 필름처럼 돌아가기 시작하고, 귓가에서 웅웅 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암환자에게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모멘트였다. 수술을 기다리고 애간장을 태우는 동안 내 상태는 더 나빠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고, 이렇게 혼자서 공포의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서부에 있는 친한 언니가 암환우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미안했지만, 염치 불고하고 연락을 했더니 이내 곧 연락이 왔고, 그 언니와 한 시간 남짓 통화를 한 후에 나는 Melatonine(수면유도제) 한 알을 먹고 만 이틀 만에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언니는 두 번의 수술을 한 사람이었다, 첫 번 부분 절제술 이후에 암 조직이 다시 발견이 되어 두 번째 전절제 수술을 하고, 항암과 방사선까지, 그야말로 모든 과정을 다 거치고 치료 이후 환우회를 조직해 활발히 활동을 하며 나 같은 미국의 유방암환우들을 물심양면 돕고 있는데, 내가 언니와 삼백 몇십번째로 상담을 한 사람이라고 했다. 모든 결과를 종합해 보건대, 나는 발견을 해준 의사에게 고마워해야 할 정도로 감지하기 어려운 초기 중의 초기, 항암은 안 해도 될 듯하고 예방차원으로 방사선을 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리 어려운 치료가 아니라고... 미국 유방암환자가 엄청 많고, 그래서 그나마 다른 암보다는 수술도 치료도 모든 게 시스템이 잘 되어있으니, 굳이 꼭 한국에 가서 수술을 받고 싶은 이유가 있으면 모를까 여기서 해도 괜찮겠다는 언니의 설명에,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어가면서 내 상황을 다시 한번 찬찬히 확인해볼 수 있었다.

닥친 상황이 두렵고 힘들겠지만, 감사할 상황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잘 수술받고 치료받고, 앞으로 더 건강 챙기며 살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생각하자는 언니의 말에, '그래, 잘 아프면 되는 거야'라고 되뇌며 어수선한 생각들이랑 물리치고, 내가 할 일들만 집중해서 하기로 결정했다.


혼자서 열심히 찾아본 내용들, 수술과 치료에 관한 질문들을 빼곡이 적어놓은 메모를 손에 꼭 쥐고 유방외과의사와의 약속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갔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보고 지나쳤던 핑크리본이 하나 가득 장식되어 있는 오피스로 안내를 받았고, 이내 곧 나보다 열다섯 살은 어려 보이는 여의사가 환한 얼굴로 들어왔다. 의사의 수술방법 및 내 진단 결과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 그리고 수술일정 결정까지 하고 나서, 수술 전 해야 하는 검사들, 유의사항을 듣고, 내가 적어간 질문들을 체크해가며 한 시간에 걸친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담당 간호사가 폴더 하나를 내밀며 궁금한건 언제든 연락해라 하며, 안에 있는 연락처와 기타 등등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이 정도면 비록 혼자서라도 여기서 수술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모두가 친절하고, 신뢰가 갔고, 생각보다 내 상태가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았기에, 미국에서 혼자 수술을 받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평소 즐겨가던 커피집에 들러 커피 한잔을 픽업해 야외 테이블에 앉아 병원에서 받아온 폴더를 열어봤다. 전담 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물리치료사 등등 관련된 모든 의료진의 연락처와, 유방암 환자를 위한 환우회 모임, 영양상담 줌 미팅, 요가 및 운동치료 안내, 수술 전 안내와 모든 일정에 대한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렇게 나는 암환우가 되었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또 마음이 울컥해졌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암에 걸리고도 남을만한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지난 몇 년을 지내왔고, 지금은 나아졌다 할 수 있으나 지난 시간들 동안 누적된 결과가 암 진단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돌이켜보고 후회해봐야 가슴만 아프고 후회만 남을 뿐이었다.

이제는 뒤를 돌아볼 때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자세로 상황에 대처해야 할 것인지 그것만 생각하기로 맘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전형적인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의 하루하루 단풍 색깔이 달라져가는 10월 중순의 아름다운 오후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