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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milk Jun 16. 2022

7년간의 회사 생활이 내게 남긴 것

퇴사를 1주일 앞두고 쓰는 일기

#2006.

대학교 때 교양수업 교수님이 하신 얘기가 있었는데, 인간은 평균 7년을 주기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거였다. 몸의 모든 세포가 재생산을 마치고 7년 전의 세포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간에 쌓인 경험과 기억들로 인해 인생에 중요한 변화를 겪어 정신적으로도 아예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평균적으로 그 주기는 7년이라고.


#2022.

팀장님께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생활을 정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6월 말로 이야기한 기한이 남은 휴가를 쓰니 중순이 되었고, 그것이 벌써 1주일 후로 다가왔다.


최근 몇 년간 미래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그 끝에는 퇴사가 있었다. 팀을 옮기기도, 지속된 코로나로 길어진 재택근무에 집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배워보기도 했지만 결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쉼과 제로베이스로 돌아가자였다. 이직을 준비한지도 어언 2-3년째, 이런저런 회사에서 오퍼를 받기도 하고 면접을 치루기도 했지만 결론은 매여있는 곳이 있으면 결국 지금 당장 편안한 곳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기회비용 없는 선택이 어디 있으랴.


#2015.

내 꿈은 세계를 누비는 멋진 활동가였다. 밤늦게까지 야근이 이어지던 홍보대행사에서 2년을 버티다 도망치듯 나와 6개월 즈음 쉬고 있을 때,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종군기자 그리고 오지를 누비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홀린 듯 한 국제개발단체에 지원했고, 입사해서 원 없이 아프리카를 다녔다.


그 무렵의 나는 잔뜩 화가 나 있는 사람이었고 언제든 화를 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오랜 대행사 세월을 거치며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도 있었겠다만 20대의 어떤 굳은 신념으로 '마지막까지 타협은 없어! 세상은 싸워서 쟁취하는 자들의 것이야!'라는 시선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보다는 세상아 덤벼라 하며 싸우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충실하게 세상만사에 대한 호불호를 정해 그것을 남들 앞에서 옹호하기 바빴고, 내 기준대로 옳고 그름을 재단해 마음대로 떠들었다. 어쩌면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누고, 그 언저리나 애매한 영역은 철저하게 거부했다.


#다시 2022.

7년이 지난 지금 나의 많은 부분이 실제로 변화했다. 나는 이제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며, 오히려 삶에 무기력해지기까지 했다. 아직 한창인 30대 중반이지만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 앞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무언가에 가슴 뛰는 것을 느껴본 지 오래다. 그 이면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예전보다 더 수용하고 존중하며 나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게 된 좋은 부분도 있다. 설사 따져 물어야 할 때가 오더라도 공손하게 상황과 문맥을 살핀다. 눈치를 보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하니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더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을 통해 안다. 7년 전 가장 친했던 친구와는 손절을 했고,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남자 친구와는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두 번의 퇴사를 하며 배운 것은 '결국 언젠가 하고 싶었던 일도 일이 되면 좋을 수만은 없다'쪽의 교훈보다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맘껏 해봐야 갈 때다 싶을 때 뒤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다'이다. 7년간의 회사생활을 하며 위기를 넘기는 순발력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해결된다는 해탈의 지혜도, 이런저런 상황 속 예상과 다른 내 모습에 실망하는 경험도 차곡차곡 쌓아갔다. 내가 적성에 맞고 잘하는 일인 줄로 알았는데 잘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나를 도와주기도 한 사람들도 있었다. 흑과 백으로 나눌 수만은 없더랬다. 좋기만 하지도, 그렇다고 싫고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가지 내가 정착한 해결점은 '너는 그렇구나'다. 나와 입장과 의견이 다른 사람, 리더로서 실망스러운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굳이 나와 결부시키지도 않는다. 그냥 저들은 저런 거구나. 선을 긋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해방이다.

나에게 퇴사는 포기가 아닌 용기다.

아무런 정해진 길이 없는 곳으로

불안과 두려움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뭐라도 하면 된다는 절박함, 긍정 마인드로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아나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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