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앞에서 멈칫하는 우리에게
어릴 때 나는 ‘심심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혼자 노는데 능숙한 아이였다.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인형놀이를 하면서 누가 옆에 없어도, 뭔가를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놀았다.
그래서일까. 주변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어쩜 그렇게 취미가 많아요?”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이것저것 시도해 온 덕분이다. 하지만 나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웃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귀차니즘의 끝판왕이다. 약속이 취소되면 속으로 몰래 쾌재를 부르고, 그저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미루기의 천재이지만, 동시에 지루함은 극도로 싫어한다. 귀찮아서 시작조차 안 하려다가도, 견딜 수 없는 지루함에 결국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 버리는 아이러니한 사람이다. MBTI로 말하자면 INTP, 논리적인 사색가 유형이다. 흥미가 샘솟으면 엄청난 집중력으로 파고들지만, 그 대상의 본질을 빠르게 파악하고 나면 금세흥미를 잃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끊임없이 시작하는 사람’이지, ‘꾸준히 무언가에 정착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토록 다양한 것을 시도하며 살아온 데에는 나의 성향뿐만 아니라 분명 환경 또한 존재했다. 우리 엄마는 '여자가 어딜!'이라는 말이 익숙했던 시절에 앞서 나간 사람이었다. 매니큐어를 칠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에게 혼날까 봐 저녁밥을 포기했고, 역사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외박이 많다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히자 홧김에 가정과에 진학했다. 그런 엄마는 응원이라도 하듯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 말은 내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이 되었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아빠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키우셨다. 집에 고칠 곳이 있으면 연장을 들게 했고, 캠핑을 하러 가면 텐트도 같이 치게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사람으로 나를 대했다. 덕분에 나는 “이건 어려워서 못 해.” 대신 “할 수 있을까? 그래, 해보지 뭐.”라고 말하는 아이로 자랐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뭐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낯선 곳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공기. 그런 것들은 늘 불편하고 조심스럽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눌러버리고 ‘게으른 방구석’에서 나를 끌어내는 힘이 하나 있다. 바로 ‘호기심’이다. 나의 호기심은 제한적이고 편식이 심하지만, 일단 발동되면 두려워도 그걸 해결하고 이해하고 직접 해보고 싶어진다. 지금처럼 다양한 관심사를 갖게 된 데에는 아마 그런 호기심의 영향이 크다.
‘왜 나는 이렇게 이것저것 많이 해봤을까?’ 그 물음에 딱 떨어지는 대답은 아직도 못 찾았다. 하지만 이토록 다양한 취미를 탐닉하며 살아온 여정의 시작점에는, 그저 심심한 것을 견딜 수 없어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다. ‘권태’라는 녀석과의 지루한 싸움에서, 나는 늘 새로운 놀이를 찾아 나섰던 셈
이다. 나의 다채로운 취미 생활은, 지루함을 피하려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