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 당신이 옳다.
세종문화회관미술관의 특별전시, <어이, 주물씨 왜 목형씨>를 보고 왔다. 도시개발로 인해 오랜 삶의 터전과 작별해야 하는 을지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은 특별한 전시회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관람객들과 멋진 소통을 하고 계신 김명중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회를 관람했다.
작가님은 먼저 6개월동안, 철물점 사장님, 식당 아주머니 등 을지로 사람들과 같이 먹고 마시며 친해지신 후, 사진을 찍으셨다고 한다. 의미 있는 사진, 피사체를 위한 사진을 찍겠다는 작가님의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전시회 제목의 ‘주물씨와 목형씨’는 주물과 목형일을 하는 사장님들의 호칭이라고 한다. 을지로 철물점 골목, 그 골목에서 오랫동안 한길을 걸어온 사장님들 사이에서는 호칭조차 바로 그분들의 일로 불리고 있다. 작가님께는 ‘사진씨’라는 호칭을 지어 주셨다고 했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영국과 미국에서 일하시며 느끼신 그들의 ‘열정과 일 자체로만 그 사람을 평가하는 문화’를 높이 평가하셨다. 또 묵묵히 한 자리를 지키며 오랫동안 일 해온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세상 그 어떤 기준도 뛰어 넘는 거룩함’을 보고 계셨다.
나와 같은 걸 보신다!
오랫동안 세계적인 미디어 회사들과 일하면서 느낀 건, 사람을 평가할 때 있어 학벌이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 열정과 경험을 통해 얻어진 일의 성과 그 자체로 평가받지,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3년 동안 엄마의 자리에서 일상을 살다 보니, 나 자신이 강해지고 그전에 없던 지혜가 생기는 것을 느낀다. 3년이 나를 이렇게 바꾸는데, 평생을 세상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힘든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삶의 무게를 감당해 온 사람들은 얼마나 강하고, 또 큰 지혜를 가지고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드니 동네 떡볶이집 할머니가,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가 감사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오랜만에 마음속 등불을 켜주는 듯한 따뜻하고 감사한 전시를 만났다.
나는 을지로 사장님들께 어떤 호칭으로 불릴 수 있을까? ‘이야기씨’ 정도가 아닐까? 평생 이야기를 좋아해, 이야기가 넘치는 미디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지금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어떤 대학에 보내야 한다 보다는 어떤 일을 하도록 인도해야 하는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래서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준비들을 해 나가야 하는 지를 관심을 두고 이끌었던 것 같다.
그림 그리기와 책, 만화, 영화를 좋아하는 큰 아이에게는 어벤저스 시리즈를 만든 마블 창립자 스탠리가 영웅이었다. 열살 쯤부터 이미, 어떤 대학을 갈지는 모르겠으나, 대학 졸업 후 드림웍스같은 회사에 들어가 경험을 쌓고, 그 후에 뽀로로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돈을 번 다음, 그 후엔 그 번 돈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살겠다는 아주 멀쩡한 인생계획이 세워져있었다. 아이가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서울에서 다양한 영화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 워크샵 등을 수소문해서 경험하게 했다.
아이때문에 퇴직을 고민할 때 쯤, 오랜 지인이자 나에게 끊임없는 영감이 되시는 이자희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미국 캘리포니아 위치한 세계적인 디자인 대학인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을 졸업하시고 우송대학교 미술대학교 학장을 지내신 분이시다. 컬러를 사랑하시고 후배양성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계시다.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아이가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마블영화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아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하고 교과서와 참고서에 캐릭터 그림이 한 가득 이예요.” 말씀드렸더니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면 마음이 움직일 수 있어요. 아트센터와 헐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견학을 한번 만들어 봅시다.” 하셨다.
2017년 1월, 이 교수님을 따라,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LA로 갔다. 맨 처음 향한 곳은, 아트센터. 우리를 위해 Lorne Buchman학장님과 영화학과 학과장님까지 만나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학장님께서 아이의 그림을 보시더니 “Profound!” 심오하다고 하셨다. 아이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엄마 여기는 대학교밖엔 없어? 중학교 때 올 수는 없는 거야?” “응, 여긴 대학이야. 그 때까진 좀 기다려야 겠다.” 녀석이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다음은 드림웍스(Dreamworks). 쿵푸팬더, 마다가스카, 슈렉 등의 애니메이션이 탄생한 곳이다. 아트센터 출신 디자이너 분께서 우리를 맞아 주셨다. 회사 건물 전체서 외부인 공개가 가능한 곳들을 보여주시며 애니메이션 디자이너로서 경험을 이야기해 주셨다. 아이의 눈이 반짝이며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디자이너분과 나누고 있었다. 아들 스스로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세번째는, 마블영화의 특수효과 작업을 하는 메쏘드(Methods Studio) 스튜디오였다. 그 곳에서 이 교수님의 후배이신 유진정 선생님과 만났다. “여기서 일하려면 뭘 잘해야해요?” 아이가 물었다. 디자이너 선생님께서는 예상밖으로 “영어랑 수학을 열심히 해야 해. 프로그래밍을 아는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밍을 이해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할 수 있는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 단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영어. 수학 열심히 하겠구나!
마지막으로, 디즈니 스튜디오(Disney Studio)도 방문하고 현지 영화감독과의 만남등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수학도 영어도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 꿈만 꾸던 곳에서 자신의 워너비인 분들과 직접 만나 보고 들으면서 자신안에서 존재하는 밝은 빛을 찾은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났지만, 조금씩 희미해져가는 불꽃이 꺼지지 않게 불어 가며, 아이는 오늘도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그 빛을 찾게 도와주신 교수님께 진정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