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가 리더십의 시작

살림을 통해 얻은 통찰

by 블루비얀코

단조로운 일이야 말로 성품을 평가하는 시금석이다 – 오스왈드 챔버스

퇴사를 하고 나니 생활비를 줄여야 했다. 도우미 아주머니를 계속 계시게 할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계속 일을 했으니, 애 둘을 키우면서도 살림은 늘 아주머니들께 의존해왔다.


음식 솜씨가 뛰어나신 친정 엄마는 결혼 전, 설거지라도 도우려 싱크대 앞에 서면, “넌 이런 거 못해도 돼. 공부나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 가고, 돈 많이 벌면, 사람 두고 시키면 돼.” 하셨다.


하지만, 평생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시며 손가락 마디가 굵어진 어머니 손을 볼 때면, 40대 중반 아이 둘의 엄마인데도 여전히 아기같이 뽀얀 내 손에 대해 묘한 열등감이 생겼다.


CEO를 한 난데 살림을 못하랴? 이제 본격적으로 주부 노릇 좀 해보리라. 백화점 지하를 돌며 음식 담을 예쁜 그릇도 사고, 청소도구도 잔뜩 샀다. 비싼 무선 청소기도 사서 세워 놓았다.


남자 셋과 같이 쓰는 화장실 청소가 가장 힘들었다. 매일 같이 세제를 잔뜩 뿌리고, 변기용과 욕조용 수세미를 따로 구분하여 바꿔가며 하니, 화장실 청소만도 한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고 입은 옷을 바닥에 그대로 벗어 놨다. 매일 흰옷 한번, 색깔 옷 한번, 하루 두 번씩 세탁기를 돌렸다. 오래된 아파트라 세탁기 배수구가 자주 막혔다. 그럴 때마다 락스나 배수구 세정제로 안되면, 아파트 관리실에 요청을 해 배수구를 뚫어야 했다.


오후 간식을 만들어주고, 저녁밥까지 해주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매번 설거지가 제일 꾀가 났다. 사내 애들 둘을 키우다 보니 치우고 돌아서면 어질러져 있고, 정리를 해도 몇 시간 밖에는 유지가 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애들 학교 보내고 오전 내내 일을 해도 일이 남았다.


나만 청소하고 빨래하는 게 억울하기도 해서 남편과 애들에게 짜증을 내면서도, 정작 남편에게 음식쓰레기 봉지 들려 내보내기가 영 내키지 않았다.


살림 속 깨달음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해도 3개월이면 적응이 됐었는데, 살림은 영 다르다. 아주머니 그만두시고 1년이 지나도 여전히 힘에 부친다. 우리 집 일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엄마인 나도 이 살림 다 하기가 쉽지 않다.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후한 월급 드리고, 식재료랑 세제랑 떨어지지 않게 사서 꽉꽉 채워드리니 우리 집 계시기가 편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녔다. 그 동안 애들 키워주시고 살림 맡아서 해 주신 아주머니들이, 신이 보내준 천사들이셨구나.


혼자서 살림을 하다 보니 그전에는 몰랐던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사들이기만 했던 것들을, 직접 몸으로 일하고 써보니, 그게 다 필요치 않은 과한 소비라는 걸 알게 됐다. 매일 빨래를 하니 애들 옷이 그렇게 많이 필요치도 않고, 예전만큼 과일, 야채를 사들이면 썩어 버리는 게 반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생활비가 줄었다.


올리브유로 요리한 프라이팬과 고기를 구워 먹은 프라이팬을 닦을 때가 달랐다. 올리브유는 물에 잘 녹아 힘들이지 않아도 닦이는데, 고깃기름은 닦으려면 힘들게 씨름을 해야 했다. 우리 몸에 들어가서도 이렇겠구나 생각이 드니, 아이들에게 야채를 더 많이, 고기를 덜 해주게 되었다.


우리 집서 매일 쓰는 세제와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각 집마다 별반 다르지 않다면 진짜 문제겠구나. 우리 세대에 이렇게 지구를 막 쓰면, 애들 때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된다. 일단 세제부터 줄였다. 설거지도 수세미에 세제를 짜기 전에 물로만 닦아도 되는 그릇 먼저 닦고 세제를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아이가 린스가 두피에 안 좋다는 걸 유튜브에서 봤단다. 샴푸만 쓰고 린스를 안 하는 대신 머리를 찬 바람에 말렸더니, 머릿결이 오히려 좋다. 그럼 빨래도 마찬가지 아닐까? 섬유유연제를 안 넣었더니 배수구도 안 막히고, 향은 약해도 빨래 냄새가 오히려 안 난다. 그러니 배수구 청소 제도, 세탁조 세정제도 덜 쓰게 된다.


그러고 보면 옛날엔 그런 거 없어도 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의 고민을 덜기 위해 두 개의 고민을 만들고, 또다시 그 고민을 덜기 위해 셋, 넷의 고민을 만들며, ‘걱정의 시대’를 ‘창조’ 해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혼자 살림을 하기 시작한 지 3년쯤 되니, 여간해서는 살림했다고 몸이 아프지는 않다. 청소, 빨래, 설거지, 집 정리 등 모든 일의 리듬을 알게 되고, 효율적으로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통찰이 생긴다. 마디가 적당히 생겨난 내 손이 기특하다.


내가 이 힘든 일을 집안에서만 해도 삶이 유지되는 게 감사하다. 미화원 아주머니, 경비원 아저씨 또한 신이 보낸 천사들인 것 같다.


그래서 진주 귀걸이를 한 여인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는 일상에서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가장 밝은 색을 사용해 빛나게 묘사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청소가 리더십의 시작이다!

엄마로서 가족들을 먹히고 입히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음식을 만들고, 곳곳을 닦고, 정리하는 일. 이 일을 통해 나는 강해졌고, 부지런해졌으며, 그동안 느끼지 못한 감사와 지혜를 얻었다. 환경이나 교육 등 사회 중요 문제에 대해서도 몸으로 직접 체감하며 걱정하게 되었다.


이게 리더십의 시작이 아닐까?


매일 저녁 나는 당당히 남편과 아이들 손에 음식쓰레기 봉지를 들려 내보낸다. 반복되는 그 과정이 그들을 강하고, 지혜로우며, 감사할 줄 아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훌륭한 리더가 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