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는 나무

나무가 전해주는 진리

by 블루비얀코

우리 집은 아파트인데도 나무 화분이 한가득이다. 애들이 태어났을 때, 작명가에게서 사주를 보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때 아이들 사주에 나무(木)가 부족하다고 했단다. 그래서 남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화분을 들여온다.


남편회사에서 결혼기념일마다 화분이 하나씩 들어오기도 하고, 또 애들이 매 학년 식물 기르기를 위해 학교에 가져갔다 다시 가져온 화분들도 버릴 수가 없어 들고 키웠더니, 집 곳곳에 식물이 가득하다.


큰 애가 초등학교 졸업하는 날, 학년 초 학교에 가져갔던 화분을 가져왔다. 쇼핑봉투서 화분을 들어 올리는데, 주황색 화분에 아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눈코 입을 단순히 그려 넣었는데, 그 얼굴이 얼마나 선하고 익살스럽던지, 마치 아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화분이 얼굴 같고, 그 안에 심긴 호야가 머리카락 같았다. 이 녀석은 순간을 재미로 만드는 천부적인 자질을 가졌다. 싱크대 옆에 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화분 안에 심긴 호야가 너무 커버려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큰 화분으로 옮겨줬다. 그런데 아들이 얼굴을 그려 넣은 화분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크기가 맞는 다른 작은 식물을 심어주었다.


워낙 작은 화분이라 금새 식물들이 웃자라 버린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 네 개의 식물이 그 화분을 거쳐갔다. 지금은 커피나무가 아들의 화분에 자리 잡고 있다.


사춘기 아들 때문에 화가 나면, 나는 설거지를 한다. 뜨거운 물을 세게 틀어 놓고 분노의 설거지를 하다 보면, 아들의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익살스러운 얼굴이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럼 화가 풀리고 만다.


우리 집서 가장 큰 나무는 2미터쯤 되는 해피트리다.


중국에서 일하다 한국에 와서, 국내 미디어 기업에서 전략담당 임원으로 일을 시작했고, 1년 후에 그 회사 CEO로 발령을 받았다.


그동안 대학원 동기들은 컨설팅, 뱅킹 업계에서, 높은 연봉받고 잘 나가고 있는 데, 나만 미디어업에 들어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속상하기도 했는데, 한 우물을 파 온 보람이 느껴져 기뻤다.


그런데 회사 내 분위기는 영 아녔다. 그 자리는 오랜 기간 일 해오던 회사 내 모든 임원들의 선망의 자리였다. 공채로 입사해 20년 이상 일한 에디터 출신, 광고 영업 출신 임원들이, 이 자리만을 생각하며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굴러들어 온 돌’인 내가 그 자리에 발령이 나니, 모두가 실망하고 어이없어하는 분위기였다.


정황상 직원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지난 1년을 열심히 일하며 성과를 냈는데 속상했다. 남편에게 하소연했더니 그 사람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런다며, 이제부터 천천히 보여주면 된다고 했다. 역시 가족이 내 편이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키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달려 있는 리본을 보니 ‘승진을 축하합니다’라는 글과 남편의 이름 석자가 쓰여 있었다.


자랑스러운 나의 아내에게,

나는 당신이 누구보다 잘해 낼 것이란 걸 믿습니다. 축하합니다!


카드를 들고 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룹 내 이직을 해 사무실이 바뀔 때도, 3년 전 퇴사할 때도, 다른 좋은 물건들은 다 직원들에게 나눠줬지만, 이 나무는 힘들여 집으로 모셔왔다.


남편에게 화가 나 미울 때마다, 일부러 그 나무 앞에 선다. 그러면 화난 나에게 그 나무가 이야기를 한다.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를 보면 그의 마음을 알잖아요.”


고전 문헌학자 배철현 교수님의 글을 보니, 크세노폰이라는 그리스 역사가가 <고레스 교육기>라는 책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왕 키루스를 정원사로 묘사했다고 한다. 흠 왜 정원 사지. 나무를 가꾸는 게 왕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궁금해진다.


호기심을 가지고 나무를 대하니 식물 가꾸기가 재미가 난다. 실제로 나무는 사람과 비슷하다. 사람도 물을 마실 때 조금씩 마시는 게 좋다는데, 나무에 물을 줄 때도 조금씩 천천히 줘야, 물이 내려가며 공기가 같이 내려가 뿌리에 좋단다. 그래서 나는 주둥이가 가늘고 긴 커피 주전자로 화분에 물을 준다.


나무는 분갈이를 하면 몸살을 한다. 잘 자라던 나무도, 아무리 좋은 흙을 넣어주고, 열심히 물을 줘도 자리가 바뀌면 몇 개월을 성장을 멈추고 시들시들 힘들어한다. 아이들을 전학시켜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은 인간에게도 정말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원을 잘 가꾸다 보면 인간사 진리를 파악하여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옛날 사람들이 훨씬 현명하다.


나무의사로 30년간 나무들과 호흡하며 일해 오신 우종영 작가의 “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를 보면, 나무가 우리에게 세상 많은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 내용 중 아이들 교육 관련하여 크게 공감하는 부분은, ‘적지적수(適地敵樹)’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심어야 하듯이, 아이도 기질에 맞게 자리만 잘 잡아주면 잘 자란다는 이야기다.


작가님 책 중 ‘나무에게 있어서 적응은 가진 것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변화를 올곧이 받아들이며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완전히 적응하는 것. 그것은 나무가 이 지구 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랜 생명체가 될 수 있던 원동력이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상황에 적응하시고 버티시는 우리 부모님께서 오랫동안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실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긴다.


코로나 발병 이후, SNS에 꽃과 나무 같은 자연의 풍경을 찍은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 모두들 혼란스러워하는 이 시대에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가 전하는 진리와 길을 찾으려는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