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뷰티 디자이너

더욱 아름다워질 당신과 나의 삶을 위해

by 블루비얀코

세상의 변화가 하도 빠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앞으로 아이들은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미래에 빨리 사라질 직업 vs 급부상할 직업 BEST라는 제목의 블로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테크노 사피엔스가 온다>라는 책의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기사였다. 미래의 급부상할 직업 베스트 5는 1) 스마트 시티 개발자 2) 1인 콘텐츠 사업자 3) 스마트 콘텐츠 큐레이터 4) 사물인터넷 연결 개발자와 같이 누가 봐도 미래에 전도유망할 것으로 여겨지는 직업군과 함께 5) 뷰티디자이너가 소개되어 있었다.


‘뷰티디자이너’란 알면서도 모를 것 같은 직업이 부상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신하게 되므로 사람들이 야근, 주말근무, 위험한 일로부터 해방되어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수명이 길어진 100세 시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건강과 미용에 관심을 두게 된다.’라는 것이었다.


이글에선 미용이란 분야로 한정시켰지만, 결국 AI가 인간의 많은 일을 가져가 인간에게 시간이 더 많이 주어졌을 때, ‘아름답고 싶다’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우리를 더 아름다운 인간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 이후로 미용실에 갈 때마다 나를 담당해주신 선생님께 꼭 이 기사를 전달해주곤 한다.


굳이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팬더믹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지난해, 줌으로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보면 뷰티디자이너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상회의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외모’에 좀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사실이다.


봄부터 화상회의 앱을 통해 진행된 교회 성경 모임에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맨 처음 미팅에 참여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건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얼굴이었다. 대면 모임 때에는 볼 수 없었던 내 얼굴을 수업시간 내내 보면서, 얼굴의 팔자주름과 추레한 머리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화들짝 놀라 팔자주름 없애기 동영상을 찾아 얼굴에 롤러를 문질러 대고, 미용실에 들러 머리 모양도 샤프하게 바꿨다. 가장 이뻐 보이는 조명을 찾기 위해 집안 곳곳 장소를 바꿔가며 수업에 참여했고, 서랍에만 넣어두었던 스카프나 목걸이도 목에 매어 보았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같은 조에서 공부하던 학생들 모두 수강기간 16주가 지나니 일명 연예인들에게 나타난다는 ‘카메라 마사지’ 효과가 나타나, 머리도 새로 하고 화장도 하는 등 모두들 예뻐지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화상회의 캠빨 잘 받는 메이크업’ ‘화상회의 예쁘게 나오는 법’ 등 카메라 앞 뷰티에 대한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는 걸 보면 ‘내가 그렇게 느끼면 너도 그렇게 느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 비대면 생활을 경험하면서, 시간과 비용도 절약되고 또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외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도 만남을 가지게 되는 문명 이기의 장점을 누려보니, 앞으로는 바이러스의 위험이 줄어든다 해도, 비대면 모임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연예인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될 것이란 예측도 근거가 없지는 않을 듯하다.


1996년 즈음, 국내 한 대기업의 회장님은 '우리 제품이 기술력으로는 외국제품에 밀리지 않으나 디자인이 떨어져 외국제품에 밀린다'고 판단,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포하고 사내 디자이너 교육과 디자인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기업의 디자인 능력을 향상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내부 디자이너 교육을 위해 미국 유수 디자인 대학인 아트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아트센터)과 함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의 스태프로 일했던 2년여의 기간 동안, 나는 세계적인 수준의 아트 학교 교수님들을 통해 미와 디자인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특별히, 멀티미디어과의 교육을 담당하시던 제임스 미호 교수님은 그 프로그램을 거쳐간 모든 디자이너와 스탭에게 잊을 수 없는 분이셨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미호 교수는 백발의 일본계 미국인으로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눈과 열정적인 에너지를 동시에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특히 집중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한 분야의 마스터에게서만 볼 수 있는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멋쟁이였다. 어떤 옷을 입던 늘 정갈하고 세련된 그에게서는 빛이 났다.


우연히 동료 직원들과 함께 그의 한국 거처에 초대받아갔다가, 문이 활짝 열린 옷장을 보고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세련된 모습을 보이는 그의 옷장은 멋진 옷들로 가득할 거라 상상했는데, 오히려 그 옷장 안에는 검은 재킷 한 벌, 흰 셔츠 두벌, 카키 바지 두벌이 전부였다. 다양한 컬러를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색깔을 시도해 봄 직도 하겠으나, 그의 최소한으로 절제된 컬러 사용은 그의 백발과 함께 그를 항상 멋지게 보이게 해주는 방법이었다. 타지에 일시적인 거처에 많은 물건을 두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도 더해졌겠지만 그는 ‘자신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컬러 팔레트’를 잘 알고 있었던 거다.


미호 교수와 샌프란시스코에 같이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지역에서 꽤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다. 워낙 인기가 있는 그 식당에서 자리에 앉기까지 한 시간 정도를 식당 입구 쪽 바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기다리는 내내 미호 교수는 식당 손님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여성 식당 매니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키 160이 될까 말까 한 키에 우리나라 기준으로 88 사이즈는 되어 보이는 넉넉한 풍채의 몸을 지닌 중년 여성을 보고 미호 교수는 “She’s so sexy!”를 연발했다.


의아해하며 전형적인 미인이 아닌데 왜 그렇게 멋있다고 하는가 물었더니, 미호 교수는 "She knows what she is doing and she knows she does it well!"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분명히 알고 있고 자신이 그 일을 잘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는 외모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남다른 자신감과 에너지가 보였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그의 관점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돌아보면 미에 관련된 고수로서 그는 “자신을 알고,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알며, 주어진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카리스마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 ‘아름다움’에 어원을 찾아보면 아름은 ‘알다’에서 나온 명사로 아름답다의 본래 의미는 ‘나답다’ 또는 ‘알고 있다’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나답다’가 미(美)의 어원이었다니 우리 민족은 ‘태어난 대로의 천성을 존중하는 인간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나보다는 우리를 중요시하고, 개성을 가진 개인을 문제아로 낙인찍는 획일화된 문화는, 어쩌면 우리 민족의 미의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느낀다.


자신을 알고 개성을 가진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인 시대를 더 아름답게 살기 위해, 새해에는 나를 가장 빛나게 하는 컬러 팔레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집 근처 박물관에 좀 더 자주 들러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을 좀 더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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