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대박 포트폴리오

by 블루비얀코

차가 유독 막히는 출근 시간. 상도터널에서 한강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로 이어지는 맨 오른쪽 우회전 도로는 다리 시작 전부터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러기에 정신 차리고 미리미리 맨 오른 차선을 타고 가야만 진땀 빼지 않고 강변북로에 진입이 가능하다.


차간 거리를 유지하며 지루하게 막히는 길을 가다 보면, 차간 거리를 유지하면서 운전하는 걸 선호하는 편인 내 차 앞에는 양보해달라며 왼쪽 차선에서 차 머리를 앞으로 밀어 넣는 차들이 유독 많다. '초행길이라 모르고 차선을 미리 바꾸지 않았을 수 있겠지, 전체 흐름에도 도움이 되니까, 지금 도와주면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찰나의 순간 동안 '빨리 갈 수 있는 주어진 권리를 양보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마음을 결정하고 멈춰서 차를 넣어준다.


양보를 해 준 앞의 차가 양쪽 깜빡이를 반짝이며 감사의 인사를 할 때면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한대를 넣어주면 그 다음 또 한대가 내 앞에 머리를 들이민다.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요?


어느 경우는 내가 양보해줄까 말까 마음의 결정을 하기도 전, 자신의 순발력과 운전실력을 한번 보라는 듯, 차 앞머리를 과감하게 들이밀며 끼어 들어와 사고 직전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순간 옆 차선 기회주의자들의 호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나의 기분은 그렇다고 해도 뒤차가 빵빵거리기 시작한다. '이 바보야! 바보짓 그만하고 가자고!' 하는 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리는 듯하다.


고민이 시작된다. 아주 바쁘지 않다면 차 몇 대 양보하는 것까지도 괜찮은데 그렇다고 바보가 되긴 싫다.


그럴 때마다 상상을 해본다. 은행의 계좌처럼 착한 일을 하면 '선행의 계좌'의 잔고가 늘어간다면, 끼어드는 차 양보해주기 정도는 얼마든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돈 쓸 때 얻어지는 홈쇼핑 포인트나 통신사 포인트처럼 '선행의 포인트'도 어딘가 계좌에 쌓인다면, 고민이 없어질 텐데. 그러면 끼어들기 때문에 생기는 도로의 시비들도, 층간 소음문제도 또 모든 법적인 문제도 훨씬 줄어들 수 있을 텐데.


그런 건 정말 없는 걸까?


어느 날 아침 묵상 책을 읽다 보니 '감정 은행계좌'라는 단어가 나왔다. 오호! 감정 은행계좌라고?


그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경우 감정이 크게 반응하는 경우는, 보통 한 가지 어떤 사건이나 말 때문이 아니라, 감정의 계좌에 쌓여 결정적인 사건이나 한마디 말로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감정 은행계좌'는 사람들의 마음에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개인뿐 아니라 집단에게도, 여론에도 '감정 은행계좌'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렇담, 선의 계좌, 악의 계좌, 덕의 계좌 이런 건 어떨까?


3년 전쯤 베스트셀러가 된 책 '운을 읽는 변호사'의 작가 니시나카 스토무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50년간 1만 명 삶을 분석한 74세 변호사 니시나카 스토무 가 밝힌 운의 과학에 대한 책인데 운의 좋고 나쁨은 결국 도덕성이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1만여 명의 삶을 50년간 분석했다니, 웬만한 대학 연구보다 샘플 사이즈도 기간도 신뢰할 만 하다. 변호사로 인생을 살아온 74세 노인이 단순히 인세가 욕심나 근거 없는 이야기를 꾸몄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인터뷰에 소개되었던 그의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그에 따르면 지독히 운이 없는 사람과 사업이 잘 되고 나날이 번창하는 사람은 가장 큰 차이는 '덕'을 쌓고 있는가 여부라고 한다. 변호사인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클라이언트에게 가능한 소송을 피하도록 권유한다고 한다. 소송에서 이겨도 진 사람에게 원한을 사기 때문에 운이 좋아질 수 없다는 게 그의 오랜 세월 의뢰인들의 삶을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재산 분쟁 등 소송에서 이겨서 큰돈을 손에 넣었다 해도, 분쟁으로 손에 넣은 돈은 곧 잃게 되는 경우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책을 읽는 동안 그는 '인정을 베푸는 일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따라서 선행을 해도 그것에 대해 자랑하거나 교만한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 운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여러 군데 학교나 직장에 지원해 합격하는 것조차 타인의 합격 기회를 방해하는 것이니 좋지 않다라던가, 마트 주인을 위해 유통기한이 가장 적게 남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이라는 부분에는 온 마음으로 동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인격이 아직 여기까지는 아닌가보다.


'부나 권력을 원하는 것은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덕을 쌓으면 충실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좋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인덕이 높고 부나 권력에 욕심이 없는 사람일수록 운이 좋아져 오리려 부나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행복론의 결론을 이야기한다.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을 손에 넣으려면 덕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고 나니, 덕의 은행계좌는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반쯤 확고해진다.


나머지 반의 생각을 굳히기 위해, 구글 검색 창에 '베푼 대로 돌아오리라'라는 뜻의 영어 속담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를 찾아보았다. NBC Today Show 등 여러 매체에 소개된 Billy Ray와 Sarah Darling 란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컵에 넣어주는 동전에 의지하며 거리에서 노숙자의 삶을 살던 Billy. 어느 날 그를 지나던 여인 Sarah는 Billy의 컵에 동전을 넣어준다. 그런데 실수로 그녀의 다이아몬드 약혼반지가 컵에 떨어지고 그녀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집으로 향했다.


Billy는 자신의 컵 안에 담긴 다이아몬드 반지를 발견하고, 동네 보석상에 들러 시세를 확인한다. 그 자리에서 4천 불 우리 돈으로 4백만 원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돈은 노숙자로 사람들이 넣어주는 동전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그에게는 적어도 1년 이상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었을 것이다.


고민하던 그는 반지를 팔지 않고 잘 보관했다. 그렇게 비싼 물건이라면 주인이 꼭 찾으러 올 것 같아서였다. 며칠 후, 혹시나 하고 찾아온 Sarah에게 그는 즉시 그 반지를 돌려준다.


Billy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Sarah와 남편은 TV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 이 이야기를 알리고 인터넷 모금운동을 벌였다. 미국 전역에서 8천 명이 넘는 사람이 감동적인 이야기에 지갑을 열었고 놀랍게도 십팔만 불(맞다 2억 원 가까운 돈이다. 나도 여러 번 확인했다.)이라는 금액이 모금이 되었다.


Billy는 그 돈으로 집도 장만하고 노숙인의 삶을 끝낼 수 있었다.


덕의 은행계좌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기간 수익률이 지구 상 어떤 금융상품이나 벤처투자도 따라올 수 없는 대단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대박 상품이구나!


어쩌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예금, 주식, 부동산으로 이루어진 유형자산의 포트폴리오에 매일매일의 삶을 기쁨과 감사로 사는 감정의 계좌, 그리고 지속된 행복을 위해 적립식 펀드와 같이 불려 나가야 하는 덕의 계좌 이렇게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추가 운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주식시장에 혹자는 버블의 붕괴가 가깝다는 이야기도 하니 투자하기도 무섭고, 그렇다고 가만있자니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답답했는데, 당분간은 이 덕의 계좌를 좀 관리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옆 차선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을 운전자를 위해 '편한 마음'으로 양보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혹시나 뒤에서 빵빵거리면 속으로 이렇게 이야기해야지. '저는 지금 제 행복의 고수익 적립식 펀드를 관리하고 있는 중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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