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느질 퀼트와 만나다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 내릴 무렵 창밖 건물벽에 유려한 곡선으로 새겨진 간판이 눈에 띄었다. 퀼트 스튜디오.
'호기심천국'인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림이 더 이상 실력도 늘지 않고 힘들고 답답하던 차에 새로운 에너지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며 스튜디오 벨을 눌렀다.
중년의 한 여자분께서 가벼운 걸음으로 살포시 미소를 띠시며 걸어 나오셨다.
"퀼트를 배울 수 있는 곳인가요?"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그곳에는 알록달록 오색빛의 천들이 희한한 모양으로 이어져 이불, 커튼, 가방, 옷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도시 속 판타지월드 같았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선 엘리스가 된 느낌!
"네 손바느질로 하는 퀼트예요. 손으로만 한답니다."
"손바느질이라고? 벽에 걸린 이 모든 게 손으로 만든 거라고?"
벽과 테이블 위를 온통 차지한 작품들의 삐뚤빼뚤한 만듦새에 남다른 매력과 끌어당김이 있는 이유가 그거였구나!
"저 이거 할래요!"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말을 내뱉은 다음이었다.
기본기를 익히기 위한 바늘꽂이와 파우치 가방을 만들기 위한 패브릭을 두 가지 고르라고 하셨다.
무지갯빛으로 정리된 다양한 색과 패턴의 옷감장을 눈으로 훑는 호사를 누린다! 색깔별로 정리된 옷감장에서 나란히 서있는 두 가지 색의 천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연한 파랑에 잔 꽃무늬가 프린트된 것이었고 하나는 갈색의 헤링본 무늬의 천이었다.
하늘과 땅, 꽃과 나무! 상반된 듯, 조화로운 두 천이 긴장과 재미를 자아냈다.
첫 수업시간, 자를 대고 패턴을 그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자를 대고 선을 긋고 무엇인가를 잘라 본 게 언제인가 싶었다. 시접 부분을 고려해 정확히 그려 넣어야 했다. 실수가 없을 수가... 급 겸손해진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재봉가위를 들고 천을 잘랐다. 가위가 천 가운데를 지나가며 내는 사각사각하는 소리와 함께 홍해가 갈라지는 천의 모습이 묘한 희열을 느끼게 했다.
드디어 바늘과 실을 잡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손가락 끝으로 작은 바늘의 귀를 잡는 순간 미세한 손끝의 자극으로 인해 온몸의 세포가 긴장태세를 갖추었다.
선생님의 시연을 따라 줄을 맞추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바느질을 해나갔다. 작은 네모 두 개를 꿰매 붙이고 다시 한번 꿰매고 나니 네모 네 개가 하나로 맞춰진 컬러풀한 조각을 만든다.
퀼트가 이런 거구나!
바늘과 가위가 만들어내는 날카로움과 긴장,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알록달록 천들이 만들어내는 재미!
두 시간 수업시간이 후딱. 무엇인가 내 시간을 잡아채갔나? 꽤나 집중했었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쥐어진 시각의 바늘꽂이. 커피가루로 안을 채우니 후각까지 깨운다.
진정한 감각의 향연!
앞으로 퀼트 원더랜드 안에서 또 어떤 나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로 가득 찬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