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올라라!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물 흐르는 대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사는 게 답이라고들 하지만...
50 중반에도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놀라고, 실망하고, 주저앉으려고 하는 자신을 느끼며 인생의 진정한 멧집은 언제쯤 만들어지는 건지 궁금하기도.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몰려 육체적 정신적 부담이 큰 시기에 역대급 폭염 속 몸과 마음의 힐링을 위해 아뜰리에를 찾는다. 그림을 그리며 대상과 그림에 온전히 몰입하다 보면 세상 염려와 소음은 온 데 간데 시간이 후딱 지나 있곤 하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땐 무조건 내가 좋은 걸 그려야 한다. 터키석 색에 진주가루를 뿌려놓은 듯 파우더리 한 블루의 새가 막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은 힐링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비대칭으로 힘껏 뻗은 날개를 포인트로 스케치하고 물감으로 색을 얹기 시작한다. 날개 빛의 오묘한 색감은 역시나 내 실력으론 무리인 걸까?
그림도 이쯤 되니 망해도 버티면 빛을 보는 순간이 온다는 걸 안다. 실망의 늪이 깊지는 않다. 선생님이 늪에서 탈출시켜 주실 테니.... 그저 기다리고 있어 보자.
대강 대강하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찌해보려는 제자의 마음을 꿰뚫으시는지, 선생님께선 오히려 추가 임무를 주신다. 빈 공간에 새의 깃털을 몇 개 넣어보면 어떨까? 주시는 의견은 날름, 받는 게 장땡이다.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깃털의 이미지를 여기저기서 모아 세 개쯤 그려 넣었다. 그런데 깃털로 아랫부분을 채우고 나니 다음은 윗부분이 텅 빈 느낌이었다.
"윗부분 어쩌죠?"
"나뭇가지 같은 걸 그려 넣으면 어때요?"
그렇게만 하면 되겠네! 검색해 찾은 올리브 가지들을 정직하게 따라 그려 넣는다. 그런데 웬걸.... 새, 깃털, 올리브 가지가 어느 한 곳에도 임팩트가 없이 어우러짐 없이 따로 놀고 있었다.
그때 그때 대응만으론 모자란 건가? 왜 정성을 다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지? 배경은 어쩐다.... 실망감이 화가 되어 스멀스멀 올라온다. 멧집이란 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붓 대신 나이프를 들고 화풀이하듯 화이트 물감을 두텁게 턱턱 얹었다 긁었다를 반복한다. 옆자리 회원에게 까지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졌는지 슬쩍 눈치를 보신다.
삼십 분쯤을 물감을 종이 위에 치대고 긁기를 반복하다 힘이 달린다 싶어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하고 있는데 화실 단톡방에 선생님이 내 그림을 올리신다. 이내 올라온 선생님 메시지!
"새가 곧 날아오를 듯합니다"
그렇게 나쁘진 않았나....
그려놓은 그림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새에 대한 책을 찾아본다. 앞뒤가 바뀐 듯 하지만....
눈에 들어온 단어는 '깃갈이'
새들은 주기적으로 깃갈이를 한다. 어떤 새는 40일씩 안전한 곳에 머물며 날지 않고 온몸의 깃털을 털어낸단다. 그리고 온몸의 깃털이 준비되었을 때, 그때 날아오른다.
올리브 나무 아래서 깃갈이를 하며 다시 날아오를 준비하고 있는 파랑새!
예기치 않게 그럴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림의 제목은 '깃갈이'
새야 날아올라라!
주어진 것에 최선을, 안될 때는 객기라도.
그림이 선생이 되어 나를 데리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