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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립니다

디어 프린세스

by 블루비얀코

아들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5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시 두 시간 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타지에 아들을 두고 온 엄마는 굳이 두 손을 맞잡지 않아도 매 순간이 기도다.


짐 싸느라 어질러진 채로 남겨진 아들방도, 빨랫줄에 널린 아들 속옷도, 당분간 주인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걸 아는지 생기를 잃은 듯하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데는 그림만 한 게 없다. 그리움도, 환희도 심지어는 분노까지도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의 에너지가 손을 타고 빠져나와 그림 속으로 녹아드는 듯하다.


마음 한켠 뚫린 곳을 메워줄 따뜻한 이미지가 없을까? 찾다 보니 영국 윌리엄 왕세손의 딸, 샬롯공주가 꽃다발의 향기를 맡고있는 사진이 마음에 꼭 와서 박힌다.


아이 얼굴 반만 한 장미송이가 꽂힌 꽃다발도 풍성하거니와 빠알간 볼을 한 다섯 살도 안 돼 보이는 공주가 꽃내음을 맡는 모습은 보는 이를 천상으로 안내하는 듯.


그림이 짐이 되는 것이 싫어 캔버스보다는 종이를 선호하는데 이번엔 선생님께서 캔버스를 권하신다. 가능한 크지 않은 사이즈를 골라 스케치를 한다. 꽃도 꽃이거니와 아이의 얼굴을 표현할 생각을 하니 마음속에 작은 흥분이 인다.


꽃은 진하게 묘사하더라도 아이 얼굴은 가능한 진한 색을 피해야지. 수채 물감에 물을 많이 섞고 다른 종이에 테스트도 해보고 색이 섞일까 조심조심.


피부는 연한 색으로 표현하더라도 입술색이나 눈썹은 색을 좀 써야 그래도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실제 사진에서는 진한 빨강인데...


진한 다홍색으로 표현한 입술이 마치 엄마 립스틱으로 장난을 해놓은 듯, 아이의 순진무구함을 가려버렸다.


보이는 데로 무조건 표현하는 것도 답이 아니구나. 색을 좀 덜어내니 그제야 아이다운 모습이다.


분홍 장미 내음이 공주의 볼로 옮겨진 듯, 상기된 공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감기가 걸려서도 코를 훌쩍이며 뛰어놀던 씩씩하던 아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때 그 어릴 적 볼 빠알간 아들이 "엄마 걱정 마. 나 잘하고 있다니까." 하며 내 맘속 빈자리를 메꿔놓는다.


디어 프린세스, 모쪼록 그곳에 있는 우리 아들 잘 좀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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