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북이 선생님
"친구들이 그러는데 내가 동물이라면 거북이일거래요."
아들 녀석의 이야기에 직감으로는 수긍이 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왜지? 호기심도 발동한다. 빠르지는 않아도 성실하다는 건가? 버티는 힘이 강하다는 건가?
한 여름 화실로 향하는 길, 땅에서부터 열기가 올라와 숨이 턱턱 막힌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그림을 그려야겠다 싶었다. 블루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냉기가 느껴지는 순간이 오던 게 생각났다. 지금이야 말로 블루톤을 택할 시기인거지.
핸드폰 갤러리를 뒤지다 바닷속을 헤엄치는 거북이의 사진을 발견했다. 푸른 바닷물 속 산호초 사이를 가르며 어딘가를 향해 성실히 헤엄치는 거북이를 보니, 아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이거다 싶었다. 아들과 닮은 거북이라니 정성을 다할 거고.. 푸른빛 투명한 바닷속의 색은 볼 때도, 칠하면서도 나를 시원하게 해 줄 거고.
역시나 그림을 그리며 바닷속에 같이 들어간 잠수부가 된 것 같은 상상만으로도 시원함이 느껴졌다. 스케치를 하고 바탕색을 칠하고는 첫 주의 작업을 마쳤다.
왜 그리 삶이 바쁜지 그림에는 일주일에 고작 하루 투자하기도 빠듯하다. 선생님께서는 늘 그 부분을 안타까워하시지만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뛰어난 화가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림을 그리며 느끼는 것과 배우는 것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채집한다는 생각이니 조급한 마음은 없다.
오히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림의 주제와 관련해 리서치도 하고 영감도 얻으면서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풍부해짐을 느낀다. 마음의 상태가 에너지가 되어 그림에 고스란히 담기니 풍부해진 마음은 그림의 에너지를 더한다.
대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 대상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네주는 경험을 한다. 관심이 에너지를 끌어당기나 보다.
거북이를 그리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나의 문어 선생님'이란 다큐멘터리가 눈에 들어왔다. 힘든 시기를 겪던 다큐멘터리 감독이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바닷속에서 암컷 문어를 만나면서 교감하고, 배우고,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보는 내내 세상 모든 창조물은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에게 들려줄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우리가 관심을 베풀지 않아 이야기를 놓치고 있는 것일 뿐....
다큐멘터리를 통해 산호초가 바다에서 하는 다양한 역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수온조절, 생태먹이망공급, 정화작용 등 알면 알수록 드러나지 않지만 대단한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서 본 오묘하고도 다양한 산호초의 색이 그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는 듯했다. 열과 성을 다해 산호초의 색을 묘사해 본다.
나의 거북이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컴퓨터 화면을 켜는데 '거북이가 바닷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이유는?'이라는 문구가 뜬다. 클릭을 하고 따라가 보니 거북이는 지구가 내보내는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단다. 그 자기장을 따라가기에 아무리 먼 곳을 헤엄쳐도 길을 잃지 않는단다. 생명을 향한 창조주의 배려가 이 정도라니!
나에겐 그 자기장이 무엇일까? 아름다운 것들, 기발한 생각들, 그리고 십자가.
놓치지 말아야 지....
거북씨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