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 그 고혹미
꽃이 싫다 어쩌다 투덜거리던 나는 어디로 가고, 요즘은 꽃만큼 아름다운 구조와 색을 가진 생명체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예전부터 많은 화가들이 꽃을 그려왔으리라.
작년 봄 아파트 단지 나무에 핀 홍매화가 눈에 띄어 사진 찍어뒀던 게 생각났다. 흰색과 주홍색의 꽃, 연두색 잎의 조화가 고혹미를 뿜어내고 있었다.
"홍매화를 그려보려고요." 꽃 알레르기 증세를 보이던 제자가 스스로 꽃을 그리겠다고 하니 선생님 눈빛속에 반가움의 기색이 역력했다.
흰색 꽃을 정말 이쁘게 표현하고 싶었다. 깨끗하고 고결하게. 흰색 꽃의 색이 진해지지 않게 조심조심.
흰색 꽃은 얼추 그럴싸하게 표현이 됐는데....
특별함이 없다. 그저 그런, 멀멀한 꽃그림이 되어 버렸다. 고혹미는 자취를 감췄다.
시작할 때 기개는 온데간데없고 울상을 하고 있는 제자에게 선생님은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신다.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매화꽃 몽우리 사이 회색빛 배경 부분을 손가락으로 좌아악 줌인해 보여주신다. 이내 드러나는 다양한 색방울의 향연!
회색이 그냥 회색이 아니네요!
'뭘 해야 할지 알겠죠?' 하시는 듯한 선생님의 눈빛에 반응하며, 오일 파스텔을 들고 회색 안에 숨어있는 베이비 핑크, 코발트블루, 샙그린, 애정하는 색들을 종이 위로 불러낸다. 다크서클이 자리 잡은 눈가에 화사한 아이섀도로 화장을 한 듯 그림에 화사함이 돈다.
단정한 홍매화 사이로 온갖 색방울들이 재잘대고 있으니, 흰색 매화는 마치 동생들의 재잘대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품이 너른 누나 같다. 고혹미란게 원래 이쁘기만 한 게 아니라 품위가 있어야 하는 건데, 배경 속 색을 끌어내는 바람에 주인공의 우아하면서도 화사한 아름다움이 부각되어 드러났다.
흰 꽃잎의 끝 부분에 사알짝 드러나는 주홍빛을 더한다. 흰 피부가 유난히 돋보이는 누나가 다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외출을 나서는 듯 하다. 설레임마저 느껴진다.
A4 사이즈 작은 그림 한 장을 그리는 과정에 드라마가 담긴다. 그림의 희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