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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립니다.

비상

by 블루비얀코

카메라 갤러리를 훑어보다 반가사유상 사진에 멈춰 섰다. 청동이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금방이고 가부좌를 풀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 유려한 선들과 세상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관조하는 듯한 가벼움. 그 극강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반가사유상을 그리려고요."

"이쁘네. 이걸 왜 그리려고 하는데요?"

"음, 이쁘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숭고미도 있고...."

"이거 하나로만은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


"작품에 무슨 이야기를 담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발상을 하고 표현을 해나갔으면 해요. 이제 단순히 한 가지 물체를 따라 그리는 것에서 좀 벗어나도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서로 다른 것들을 대비시켜도 좋고. 반가사유상은 정이라면, 동을 상징하는 것을 넣어도 좋고...."


동이라! 한껏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새의 이미지를 저장해 둔 것이 생각났다. 새를 왼쪽 아래에 넣고 반가사유상은 오른쪽 윗편에 넣기로 했다. 마치 새의 비상을 반가사유상이 기특하다는 듯 지켜보듯이. 혹은 반가사유상의 기도의 힘을 얻어 새가 비상하듯이.


반가사유상은 정적이며 유려한 선이 드러나도록, 반면 새는 그 활짝 핀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화려함을 표현하려 했다.


정과 동의 대비 안에서도 통일감을 갖게 하고 싶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은 청동의 사유상을 줌인해서 들여다본다. 신기하게도 주황, 파랑, 브라운의 다양한 색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새의 깃털에 있는 색과 다르지 않았다.


다르면서도 같은....


열심히 작업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또 한 번 질문을 하신다.

"제목이 뭐예요?"

"음.... 제목이요? 글쎄요...."

"잘 생각해 봐요."


뭘로 잡아야 할까? '정과 동?' 또는 '우리 모두의 비상에는 누군가의 기도가 있다?' 혹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그저 '비상'이라 하리라. 나의 삶에 주어진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순간 느끼는 희열, 마치 새의 비상과 닮아 있다.


그림을 보게 될 모두의 비상을 위해.


반가사유상과 맘껏 날개를 편 새를 관찰하며 그리며 마치 내가 하늘을 나는 듯, 가부좌를 틀고 세상 무게를 다 내려놓은 듯 가벼워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반가사유상에 힘을 좀 빼고 새가 온전한 주인공이 되게 만들었어야 하나 싶지만, 두 오브제가 균등한 에너지로 팽팽하게 당기는 그 대조와 통일감 그것이 내 의도에 더 맞지 않나 싶다.


그런데 너무 무겁다. 무거우면 갑갑하고 올드한데....


배경으로 좀 어떻게 해봐야겠다. 주황, 연두, 핑크, 보라 쨍한 색들을 팔레트에 잔뜩 만들어놓고 배경에 뿌리며 한 바탕 색놀이를 벌인다. 발랄함이 느껴진다.


진행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동영상릴스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조회수가 꽤 나온다.


나에게 의미 있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들, 그것들을 조금은 특별한 발상으로 표현해 가는 순간들이 정말 짜릿하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이 그림 그리기를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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