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여자 1
7월은 그녀가 내 곁을 떠난 달이다. 유난히 무덥고 끈적였던 2011년 7월, 그녀의 부고가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전해졌다. 오랫동안 함께 살던 우리 집을 떠나 작은 아빠가 계시고 본인의 친동생이 사는 시골에 다녀온다고 내려 간지 간 지 고작 1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칠 남매의 어머니로서, 도박과 술을 좋아했던 놈팡이 남편의 아내로서 그녀의 삶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들이니 내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난 그녀가 너무 짠했다.
더욱 짠했던 것은 아내로서의 삶이 끝난 후 할머니로서 또다시 희생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91년에 남편을 후두암으로 떠나보내고 혼자 넓은 집에서 나름 편하게 지내는 그녀를 자식들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결국 자식들이 뱉어낸 이런저런 구실로 혼자 살던 집을 처분하고 서울로 와서 자식들의 집에 함께 살게 된 그녀는 장돌뱅이처럼 이 집 저 집 딸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손주들을 키우게 되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증손주마저 돌봐야 했으니 그녀는 이 세상에서 허락된 모든 시간을 참으로 일복으로 충만한 시간을 끝까지 보냈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내가 영애 씨를 처음으로 인식했던 것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지만, 내가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가 나와 함께 보낸 마지막 몇 년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단순한 할머니 이상이었다. 그녀는 나의 오후를 채워주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남모를 비밀을 공유한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나에게 희생이라는 것이 가치 있는 행위임을 가르쳐준 - 엄마를 제외한 -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가, 나는 니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니까'
그래, 나를 아가로 불러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가 살아생전 머물렀던 마지막 장소는 할아버지의 무덤가였다고 한다. 그곳은 우리 집안 6대 조상들의 무덤이 모셔져 있는 곳이기도 한 장소이다. 언덕에 위치한 양지바른 그곳. 그러나 뙤약볕이 들면 피할 곳 없는 그곳에서 그녀는 넘어진 채로 발견되었고, 발견되었을 때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그녀를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를 기억하고자 함이지만, 어쩌면 인생의 가장 낮은 곳을 지나 이제는 일어나고자 하는 나의 삶에 내 인생의 첫 번째 여자인 그녀를 다시 불러오고자 함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들. 내가 보아왔던 그녀의 모습들. 나에게는 그녀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녀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아가, 나는 니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니까...'
그 말에 답하지 못했었다. 그 말에 행복했었지만 나는 내색도 못했다. 그녀의 그 말에 그렇게 큰 행복을 느꼈으면서도.
나는 이제 그녀를 불러온다. 한 시도 잊은 적 없던 그녀. 두꺼워진 손으로 나를 쓰다듬어 주던 그녀.
나는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가 떠난 여름이니까. 여름은 나에게 온통 그녀니까.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