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여자 - 2
여기가 한국인가 싶은 날들이 계속된다. 기후온난화로 이제 한국도 아열대가 다돼 간다고 하는 보도들이 사실인 듯싶게 덥고 습한 날들이 계속된다. 비라도 시원하게 내리면 좋으련만 그저 하늘은 낮게 깔려 나를 질리게 한다.
에어컨을 켜놓은 채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선풍기 바람까지 보탠 채 자리에 눕는다. 내 침실 바깥에 나무가 있는지라 창을 조금만 열어도 모기가 한 두 마리 들어와 나를 괴롭히는 걸 알지만,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켜두면 죽을 수도 있다는 부모님의 전설 같은 믿음에 길들여진 나는 마뜩잖게 창을 조금 열어두었다. 잠이 든 것도 잠시. 귓가에 맴도는 윙하는 소리에 다시 불을 켜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귀찮은 그 녀석, 모기다. 눈을 떴지만 일어나 불을 켜면 이대로 잠을 잃어버릴까 고민을 한다. 왜 진작 전자모기향을 켜두지 않았을까. 나를 원망한다. 나의 이런 갈등을 단박에 종식시키는 또 한 번의 모기의 침공에 난 결국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말았다. 환해진 방안 어딘가로 숨어버린 모기 한 마리. 한참의 수색에도 소득이 없었다. 난 기어이 잠을 빼앗기고 말았다. 출근만 하지 않는다면 수색을 좀 더 해보겠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라 체념하고 불을 끈다. 그래, 나를 먹이 삼아 니들이라도 행복해라. 포기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요한 방안, 머리맡 열린 창문에서 세어 들어오는 여름 향기를 느끼고 있자니, 문득 할머니가 떠오른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던 나의 할머니, 영애 씨.
할머니는 전자 모기향을 신뢰하지 않았었다. 모기란 자고로 모기향을 가득 피워야 그 독한 향 때문에 달아난다고 믿고 사셨던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 덕분에 여름이 시작되면 우리 집 곳곳에는 안 쓰는 접시며, 낡은 그릇에 받쳐 놓은 모기향의 연기가 가득했었다. 난 모기향을 피우는 일이 왠지 재미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청해서 모기향을 피우는 일에 나섰었다. 모기향에 불이 붙는 그 순간이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새로 꺼낸 둥그런 모기향의 가운데 나있는 홈에 받침대가 기울지 않게 껴야 하는 그 정교한 작업을 해냈을 때의 뿌듯함이 실은 좋았다. 왜 그렇게 그 일이 성취감을 주었을까. 아무튼 난 정말 뿌듯했었다.
그럼 할머니의 자신만큼 모기가 잡혔느냐 하면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집안에 자욱한 모기향의 연기 덕분에 옷이며 커튼, 카펫까지 천으로 된 모든 것에 연기가 베었을 뿐, 정작 모기들은 기세 좋게 방안을 휘젓고 다녔기 때문이다. 지독한 연기와 모기향 특유의 냄새를 참아가며 밤을 보내도, 아침이면 각 자의 방에서 나오는 가족들은 모두 어김없이 여기저기 모기에게 뜯긴 모습이었다. 머리까지 모기향이 가득 밴 채 말이다. 오직 한 명, 할머니만이 모기의 방문을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럼으로 인해 할머니가 모기향에 갖는 신뢰는 유효했고 밤마다 어김없이 우리 집에는 모기향을 피우는 의식이 유지되었다.
언제부터 모기향이 집에서 모습을 감춘 걸까? 저녁을 먹고 나서 간밤에 모기에게 패한 우리가 다시 한번 모여 모기향을 찾아 불을 붙이기 바빴던 그 일상은 언제부터 사라진 걸까?
'모기는 이 놈한테 꼼짝을 못 한 다 안 하냐. 모기향만 한 게 또 어딨냐, 아가.'
어디서 사 오셨는지 구해 오셨는지 아직도 출처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상표의 모기향이 난무했던 그 시절.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닌데 마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같이 아득하게 떠오르는 그때의 여름. 늘 한 켠에 모기향과 세트를 이루던 낡은 접시들과 라이터. 간혹 선풍기 바람에 모기향의 재가 바닥에 날려 엄마를 화나게 했던 그런 날들.
난 대체로 할머니의 편이었고,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그녀의 긴 시간을 사랑했었다. 너무 자주 반복했던 그녀의 과거 이야기. 행방은 커녕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어제일처럼 끝없이 반복하던 그녀와 나의 식탁. 간밤에 집안을 꽉 채웠던 연기 덕분에 다음날 한나절은 반드시 창문이랑 창문은 모조리 열고 환기를 해야만 해서 집안으로 온통 쏟아져 들어오는 더운 열기를 온몸으로 흡수해야 했던 그 여름의 시간들.
그때 나는 그녀와 함께 였다. 그녀가 사라진 여름, 그녀는 나에게서 많은 여름을 함께 가져가 버렸다.
'할머니, 내가 이렇게 짧은 것도 피웠어. 잘했지?' '잘했다, 아가. 우리 아가는 공부도 잘하고 이런 것도 잘해.'
할머니. 나 어제도 모기에 물렸어요. 모기에 물렸다고 호 해줄 할머니고 없고, 모기에 물리지 말라고 모기향을 피워줄 할머니도 없으니 이제 꼭 전자모기향 피우고 잘게요. 걱정 말고 잘 쉬고 계세요. 항상,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