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여자 - 3
여행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설레는 이유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여행이라는 단어는 고속도로변의 휴게소와 동의어가 된 지 오래다. 여행을 떠나야만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명백하고 당연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실은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군것질거리 음식들이 나를 더 들뜨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중 나의 최애 군것질거리는 단연 통감자구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와서 더욱 작아진듯한 감자 몇 알이 기름에 굴려져 용기에 담겨있는 모습을 보면 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맥반석 오징어나 핫바등도 만만찮은 유혹의 대상이지만, 감자는 유혹을 뛰어넘는 범주, 즉 거부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휴게소 음식이 그러하듯 이곳의 감자구이의 맛은 그저 그런 예상 가능한 맛이다. 운이 없을 때는 헉하는 소리를 내지를 만큼 맛이 없기도 하다. 뭐, 휴게소 음식은 기분으로 먹는 거긴 하니까. 게다가 나는 이미 세계 최고의 감자구이를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나에게 어떤 감자구이인들 성에 찰 수는 없다.
'할머니, 감자 있어요?'
'아가, 감자 먹고 싶어? 할머니가 바로 해줄게, 쪼매만 기다려라잉.'
그러나 할머니의 '쪼매만'은 그렇게 간단치도 짧지도 않다. 그녀만의 방식과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감자를 압력솥에 넣고 삶는다. 삶을 때에도 불을 조절하고 뜸을 들이는 시간이 포함된다. 삶아진 감자는 바로 찬물에 투입된다. 찬물에 넣는 이유는 껍질을 벗겨야 하는 데 감자가 너무 뜨겁기 때문이었다. 감자가 찬물에 잠시 담가져 있는 동안 할머니는 어디선가 구해오신 양철로 된 넓적한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두신다. 사실 이 냄비가 비결의 전제가 되는 것도 같은데, 누군가의 삶이 거쳐간 낡은 노란색 양철 냄비에 해야만 바로 그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껍질을 다 벗긴 감자는 통째로 이미 달궈진 양철냄비에 올라간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 감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소금과 설탕을 적당한 비율로 뿌리고 나서도 한참을 약한 불에서 내려오지 못하다가 마침내 할머니가 원하던 색을 감자가 띠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식탁의 한가운데에 할머니의 양철냄비가 놓인다. 너무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감자는 어서 맛을 보라고 나를 재촉하고, 나는 잽싸게 포크로 감자를 집어 입에 넣는다. 제대로 씹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거의 삼키다시피 감자를 먹는 나에게 할머니는 천천히 먹으라고 또 해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맛을 어떻게 당하겠는가. 며칠 굶은 사람처럼 욕망을 채우던 나는 늘 입천장을 데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입천장쯤 희생해서 이 감자를 먹을 수만 있다면 난 얼마든지 입천장의 일부정도는 내어줄 수 있었다.
그 식탁. 양철 냄비에 가득 담긴 감자구이. 그리고 나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감자를 함께 먹던 우리 할머니. 나의 여름에는 늘 할머니의 감자구이가 있었고, 본인이 힘들게 해 준 감자구이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다 큰 손녀에게 잘 먹어서 이쁘다는 할머니의 칭찬이 있었다. 그녀의 감자구이, 그녀의 칭찬, 그녀의 웃음은 나의 여름을 반짝거리게 해 준 햇볕과 같았다. 나는 그 시절 그 햇볕을 감사함 없이 모조리 받아 안기만 했다.
여전히 난 감자를 즐겨 먹는다. 이제는 할머니대신 엄마가 쩌주시는 엄마표 감자가 할머니의 감자가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엄마의 맛있는 감자를 보면서 할머니의 감자를 추억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할머니가 아닌 엄마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이 매인다. 그래서 지금 내가 먹는 이 감자, 엄마가 정성으로 쩌주시는 이 감자에 감사하다. 감사하니까 더 맛있게 먹으려고 한다.
시간은 가고 모든 것은 달라진다. 가끔은 너무 빠르게 앞을 향해 치고 나가는 것만 같은 세월에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런 나를 슬며시 잡아주는 것은 별게 아니다. 할머니의 감자구이는 그 시절 나를 한참 잡아주고 위로해 주었고 나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에 대한 따뜻한 추억과 그리움이 또다시 나를 잡아준다.
'할머니, 나 잘 살게요. 걱정 마세요. 나 할머니 손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