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2023>
해가 채 뜨기도 전, 어슴푸레한 도로변에서 비질을 하는 소리가 창문을 넘어 방으로 들어온다. 몸 하나 드러누우면 꼭 맞는 작은 방에서 잠을 자던 남자는 비질 소리와 거의 동시에 눈을 뜬다. 망설임 없이 일어나 이불을 개어 정리하고, 읽다 잠든 책의 페이지를 확인한 후 씻고 면도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옷을 갈아입는다. 현관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는 집 앞에 놓인 자판기로 걸어가 캔커피를 하나 뽑아 출근용 차에 탑승을 한다. 시동을 걸기 전 그날의 음악을 위해 카세트테이프를 골라 플레이어에 꽂는다. 이제 남자의 출근준비가 끝났다. 음악이 흐르는 그의 차는 도쿄 스카이트리를 지나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으며 시내를 향해 달려 나간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아이디어는 도쿄의 건축가들이 지은 화장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했으나 감독인 빔 밴더스가 소재에 스토리를 입힘으로써 물리적 공간으로의 화장실을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독은 화장실 청소를 하는 한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자신의 특기를 살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따라다니며 들여다봄으로써 소소하고 미미할 수 있는 보통의 삶에서 발견되는 이중적이고 비애적인 미학을 대사라는 설명 장치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주인공인 히라야마역의 야쿠쇼 코지의 과장되지 않은 복잡 미묘한 감정연기는 성공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되어 여러 겹의 감정과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가장 눈에 띄는 구성적 특징은 주인공의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된다는 데에 있다. 영화는 그의 출근준비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출근하는 모습으로 정확하게 끝이 난다. 이처럼 일의 순서를 정해두고 그 틀에 맞추어 통상적으로 반복하는 일을 루틴(routine)이라고 부르는 데 이러 면에서 본다면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정해놓은 루틴에 맞추어 매일을 살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나름의 루틴에 의해 살아가고 있으니 루틴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남자의 루틴은 루틴과 루틴 사이로 잠깐씩 내비치는 관조적 미소와 루틴을 완성하려는 강박성으로 인해 특이성을 갖는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궁금해진다. 남자의 루틴은 우리의 루틴과는 다른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 남자의 루틴은 무언가를 위한 의도적 행위인가?
현재의 삶은 과거에 내린 선택의 총합이자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남자의 현재를 이해하려면 그의 과거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영화 어디에도 남자의 정보는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다만 젊은 동료가 하는 몇 마디 질문이나 고급차를 타고 나타난 여동생의 반응, 과거에 히트했던 팝송을 즐겨 듣거나 그가 읽고 있는 수준 높은 책들을 통해 그의 이전의 삶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단서만을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 요양원에 머물며 사람도 못 알아본다는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여동생의 말에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보아 그의 현재의 삶이 아버지와의 관계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정도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남자에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온전하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가장 온당했을까? 자신의 선택을 죽도록 원망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다가올 모든 날들을 완전하게 자신의 의지로 포용하기 위해 어떤 생각과 결정을 했을까?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 ‘위대한 유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날은 나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었어요. 왜냐하면 그날이 저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건 누구에게라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의 삶에서 딱 하루를 선택해서 그날이 사라졌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세요.
삶의 어느 지점에서 살아온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다 보면 어느 하루의 결정이 현재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것이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 하루의 결정이 다른 것이었다면 전혀 다른 현재를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에게 하루라는 단위가 갖는 중대함을 알게 한다. 그러나 삶의 과정 중에 있는 우리는 여느 하루가 결정적 하루인지를 절대 알 수 없다. 이것을 알 수 있는 시점은 오직 그 모든 하루들을 살아낸 먼 훗날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허비할 하루는 단 하루도 없는 셈이다.
남자는 하루를 단위로 정해진 루틴에 맞춰 정확하게 살아간다. 때로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남자의 루틴을 결정적으로 흔들지는 못한다. 그는 삶의 단위를 하루로 삼고 자신에게 다가온 당면한 그 하루에 최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완전한 충만함을 얻는다. 그는 루틴이 있기에 성취감을 맛보고 하루의 종결을 선언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게 하루의 종결은 새로운 날의 도래를 의미함은 물론, 떠나온 과거와 한발 짝 더 멀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에게 삶은 미래를 향해 펼쳐진 끝을 알 수 없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자신이 지금 지나가고 있는 동네의 도로와 같은 것이다. 왔던 길을 보지 않고 ‘지금’ ‘잘’ ‘이대로’ 가기 위해 그는 현재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으로 루틴을 사용한다. 그는 하루를 모아 한 달을 만들고 일 년을 기록한다. 그는 단 하루를 위해 살지만 그의 하루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완벽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삶은 예측불허인 것이다. 때로 그는 자신의 루틴에서 벗어난 일들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의 하루에는 축복이 된다. 예상치 못한 일들은 그에게 보다 정확하게 자신이 놓여 있어야 할 하루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하늘을 바라보지만 단 하루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같은 적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단 하루도 같지 않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루틴 안에 있어도 루틴 밖의 세상을 보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출근길에 나선 그의 차 안에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흐른다.
하루가 끝나면 평온하게 잠을 자요. 그러면 이 낡은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 되죠.
그는 알고 있다. 어제라는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길을 나선 그에게 이제 막 시작하려는 하루는 분명 같지만 새로운 하루가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또한 알고 있다. 이 하루 새로운 나무의 모습을 담으며 행복을 느낄 것이고, 이름 모를 타인의 사연으로 마음이 아플 것이며, 그의 현재 안 어느 구석에 남겨진 여전한 과거로 인해 가끔은 서글퍼지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하루를 완벽하게 보낼 것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