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들에게 오늘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기로가 될 날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오늘은 운 좋게 하루 쉬어갈 수 있는 단비 같은 하루였다.
나는 오늘 그 단비를 맞는 운 좋은 사람이 되었다.
학기말이라 힘든 나날 속에 맞게 된 이 하루를 만끽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늦잠도 자고, 아침도 느긋하게 먹고, 거실에 누워 새로 나온 영화도 찾아보고,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가보고 싶은 장소도 가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점심때가 되어 집을 나선 나는 오늘 가고 싶은 장소를 이미 골라 두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이곳은 북카페였다.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이곳은 다양하고 방대한 책들을 구비하고 있고,
사장님의 고급지고 세련된 취향이 듬뿍 담긴 인테리어와 함께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내 스타일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지만
이 장소가 내 마음을 더욱 빠르게 잡아 끈 것은 입구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줌파 라히리의 2023년 작인 <로마>가 떡하니 꽂혀있는 모습을 발견해서였다.
'아, 이곳의 사장님이 나랑 취향이 같으신가 보다.'
나는 더욱 신이 나서 장르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들을 공들여 살펴봤고
그 결과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과 내가 이미 읽었던 책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진짜 사장님과 나의 취향이 같은것 같은데.'
뜻하기 않게 내가 마음을 줄 수 있는 북카페를 발견하게 되어 너무 행복했다.
게다가 나의 첫 번째 아지트가 바로 근처에 있기도 해서 더욱 기뻤다.
나가는 길에 중고책 두 권을 사면서 사장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미 이곳에서 발행하는 이메일레터를 구독하고 있던 터라 대화는 아주 부드럽게 흘러갔다.
그리고 잠깐의 내 소개를 하며 지금 준비 중인 두 번째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고민이 되는 지점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사장님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곳의 독서모임 공간에서 영화모임을 하는 것은 어떤 지 제안하셨다.
자신도 책을 쓰려고 하는데 독서모임을 해보니 사람들의 독서경향에 대해 알게 되어 큰 도움이 된다고 하시면서 영화모임을 하면 영화에세이를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취지였다. 나는 너무 감사했고 할 수 있다면 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단비 같은 휴식의 하루에도 감사했는데, 뜻하지 않게 좋은 분과 함께 할 기회까지 얻었으니 오늘은 정말 감사한 날이었다. 나쁜 일뿐만 아니라 때로는 좋은 일도 꼬리에 꼬리를 무나 보다. 영화모임은 우선 12월에 3주 동안 시범적으로 해보기로 했으니 열심히 고민해 봐야지.
두드리면 문은 열리나 보다. 오늘 나는 제대로 행운의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