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

<테이스트, 음식으로 본 나의 삶> , 스탠리 쿠치

by 무비 에세이스트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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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쿠치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미국의 배우이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얼굴이 익숙한 것은 그가 1980년대에 데뷔한 이래 거의 매년 영화를 찍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스탠리 쿠치는 2006년에 나왔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처음 다가왔다가, 내가 너무 사랑하는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인 <줄리 앤 줄리아>에서 아내 줄리아를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폴 차일드로 영원히 각인되었다. 특히나 그 영화에서 그가 했었던 명대사인, "You are the butter to my bread, you are the breath to my life.(당신은 내 빵의 버터이고, 내 삶의 숨결이야)"는 지금까지도 내가 꼽는 명대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회고록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도 음식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고 해서 구입하여 읽어보았다. 책을 읽어보니 그는 예전부터 아니 아직 어린 나이 때부터 이미 음식과 요리, 맛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삶의 결정적인 장면마다 놓여있었던 음식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풀어놓고, 그 음식에 대한 레시피를 함께 적고 있다.


스탠리가 이 책을 집필한 시기는 2020년 코로나로 한창 외출을 하지 못하던 1차 봉쇄령 때라고 한다. 1960년 생이고 배우이면서 작가이고 감독이기도 한 그가 시간이 생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고록을 쓰는 일은 별로 특별해 보이지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 것은 그가 회고록을 쓰기 전에 겪었던 일과 그 일로 인해 그가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해 냈다는 것이 특별했고 의미심장했다.


스탠리는 2017년에 입에 심하게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은 결과 혀뿌리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하. 그렇게나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즐기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레스토랑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던 사람이 걸린 병이 하필 이런 병이라니... 이 부분에서 우선 기가 막혔다. 그는 그렇게 암에 걸렸으나 종양을 없애기 위해 혀의 일부를 절단하는 대신 방사능 요법으로 치료를 하며 배에 튜브를 꽂아 음식을 섭취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음식을 먹을 수는 있으나 예전처럼 스테이크 같은 고기류를 마구 먹을 수도 없고, 매운 음식 등은 여전히 삼가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누구나 인생에서 결정적 시기가 찾아온다. 운이 좋다면 대박이 터지는 행운의 열쇠를 거머쥐게 되는 초긍정의 시기가 되기도 하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작가처럼 병에 걸리거나 누군가를 잃거나 하는 식의 비극의 시기가 바로 그것이 될 것이다. 작가는 혀에 걸린 암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음식과 요리, 그것으로만 가능했던 소통의 방식이 얼마나 귀했고 소중했는지를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책의 말미에 음식은 자신의 삶을 차지하는 큰 부분이 아니라 전부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정적 시기에 자신의 삶을 새로이 써나가거나 되짚어 보게 된다.


나의 글쓰기는 내 인생에서 발생한 결정적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내 안의 것을 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나의 회고록을 써야 하는 그날이 올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도 글쓰기가 나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라는 데에 있는 만큼, 내가 지금처럼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 날이고 스스로 멈춰 서서 뒤돌아 봐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긴 이유는 그날, 내가 나의 삶을 되돌아봐야 하는 그날, 내가 나의 삶을 관통했던 그 무언가를 파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작가는 물론 혀에 암이 걸린 이후에서야 음식이 자신의 삶 그 자체이고 모든 것임을 알지는 않았다. 그는 이전부터 음식에 천착했고, 그래서 음식에 대한 영화를 스스로 만들고 음식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할 만큼 음식이 삶 자체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늦은 깨달음을 담는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라, 음식과 자신의 삶이 등치 된 그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나는 나의 회고록도 이렇길 바란다.


무언가가 삶을 관통하고 삶과 등치 되려면 그것과의 동반이 끊임없어야 한다. 스탠리에게 음식이 그랬다면 나에게는 무엇이 그러할까?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 해온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내 삶의 버터 같은 존재인 걸까?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질문을 안고 책장을 덮었다. 명확한 하나의 무엇, 나의 삶을 관통하는 그것, 이제 그것을 찾는 일이 나의 남은 생에 과제로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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