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사는 여자(2018)
'아, 진짜 미치겠다'
이처럼 일상에서 우리는 심심찮게 미칠 수도 있다고 외친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를 때,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가슴속 깊이 감동했을 때, 즉 일상에서 감정이 정상범위를 벗어나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면 우리의 이성은 우리의 감정을 표현할 정확한 표현을 찾는 대신 '미치다'라는 동사를 통해, 감정이 얼마나 고조되었는지에만 집중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미치겠다'라는 표현은 한껏 고조된 어떤 상황을 단박에 정리해주는 해결사인 셈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당신이 만일 특정한 상황에서 '미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당신은 곧바로 결박되어 자유를 박탈당하고, 영원히 갇혀버릴 수도 있다. 김 빠질 만큼 쉽사리 자유를 찾을 수도 있지만.
미쳐야 사는 여자는 2018년에 개봉한 칠레의 코미디 드라마 영화다. 칠레 영화라고? 할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칠레 영화는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칠레 영화는 종종 스페인 영화와 혼동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칠레에서 만든 많은 작품들이 실제 스페인과의 합작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스페인어로 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칠레의 국민 언어가 스페인어이니 어쩌겠는가. 글로리아(2013), 실화를 바탕으로 한 33(2015), 2018년 아카데미 외국어상에 빛나는 판타스틱 우먼(2017)을 모두 봤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감동 깊게 본 나조차도 이 세 작품이 모두 칠레 영화들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있다.
미쳐야 사는 여자의 감독 니콜라스 로페즈에게 이 작품은 감독작으로서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하며, 이 영화에서 감독은 첫 번째 감독작 '신 필트로(2016)'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파즈 바스쿠냔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섬세한 감정연기와 극강의 코미디 연기를 넘나들며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파즈 바스쿠냔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감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특이하게도 파즈 바스쿠냔은 칠레의 전직 대통령 파트리치오 알윈의 손녀이기도 하다.
-결말포함-
영화의 전개는 매우 간단하다. 38살이 된 주인공 까롤리나는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로 잡지사에 다니고 있으며 아름다운 여자다.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은 삶이지만 실제로는 임신이 잘 안되고 있어, 매사에 그녀를 간섭해왔고 이 문제에 특히 집착중인 엄마에게 들들 볶이고 있다. 영화의 핵심 사건은 까롤리나가 최종적으로 불임 선고를 받던 날, 남편과 자신의 절친한 직장동료 마이테가 그녀를 불러내어 자신들이 지난 2년간 사귀고 있음을 통보하고, 심지어 마이테가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된다. 이 기막힌 소식을 감당하지 못하는 까롤리나는 남편이 집안의 모든 물건을 다 빼가버려 텅 비어있는 집안에서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 폭음을 하게 되고 결국 만취상태로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그러나, 눈을 떠보니 천국에 와있기는 커녕, 팔다리가 묶인 채 에덴이라는 이름의 정신병원에 갇혀있음을 알게 되고, 심지어 남편이 자신을 이곳에 입원시켰다는 말에 분노로 몸부림친다. 이제 꼼짝없이 정신병원에 갇힌 까롤리나는 온갖 희한한 환자들을 견딜 수 없어 몇 차례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어쩔 수 없이 정신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뜻밖에 실비아와 로레나를 만나 친구가 되고 서서히 병원생활에 적응해 나가며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받아들이고 주변에 마음을 열며 적극적으로 병원생활을 하게 된다. 까롤리나를 시종일관 괴롭히던 엄마와의 관계 역시 솔직한 대화를 통해 변화가 찾아오고, 결국 까롤리나는 퇴원심사를 통과하여 퇴원을 하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다.
영화의 전개와 결말이 다소 뻔하게 그려지는 데다, 관객의 몫으로 두었어야 할 영화의 주제 등을 너무 대놓고 대사에 집어넣어, 나가는 문을 향해 벽마다 매우 친절하게 화살표를 붙여 둔 미로에서 탈출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드러나지 않은 한 두 가지 생각해 볼 점들이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선택할 가치를 갖는다.
먼저, 영화의 원제목을 살펴보자. 흥미로운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스페인어로 No Estoy Loca, 영어로 풀면 I'm Not Crazy,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난 미치지 않았어'이다. 이 영화의 제목 '난 미치지 않았어'라는 문장은 의미론적으로 다음의 정보를 내포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일단, crazy, 미쳐있는 상황이 존재한다. 즉, 누군가는 미쳐있다.
그런데, I'm Not, 나는 미치지 않았어.
그럼 미친 건 누구지?
I'm Not Crazy(난 미치지 않았어)라는 문장은 위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Who is crazy?(미친 건 누구야?)라는 질문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게 되었는데, 미친 사람이 'I', 즉 내가 아니라면 결국 미친 건 You(너/당신들)이나 He/She/They( 그/그녀/그들) , 즉 나를 뺀 내 주변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진짜 미친 건 누구인가?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의 까롤리나의 분노를 백 퍼센트 공감하게 된다. 어째서일까? 그녀의 주위에서 쉽게 답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그래 당연히 먼저여야 하는, 너무나 뻔뻔스러운 남편과 마이테 커플이 있다. 외도를 저지른 당사자들임에도, 교양 있고 우아한 이별로 까롤리나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시종일관 까롤리나를 위하듯 타이르는 철면피적 위선은 까롤리나는 물론 관객들마저 입이 떡 벌어지게 한다. 산부인과 의사는 또 어떠한가. 아이를 못 갖는 마음의 고통을 충분히 알고 배려해야 할 위치의 그가 까롤리나의 자궁 상태를 한 마디로 설명하겠다며 꺼내 든 것은 그보다 더 잔인할 수 없는 선인장이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지만 웬걸, 엄마 역시 급작스럽게 교화되기 전까지 쉴 새 없이 까롤리나의 인생을 헤집어 놓는다. crazy라는 단어의 다양한 의미 가운데에서 '비이성적인, 비합리적인'이라는 의미가 눈에 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묻고 싶어 진다.
진짜 미친 건 누구냐
그 다음으로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을 파악하게 된다. 까롤리나의 생일 아침, 남편은 과도한 선물과 대접을 하며 그녀를 공주처럼 떠받든다. 그러나 잠깐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까롤리나는 남편의 그런 행동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포장하기 위한 술수였음을 알게 된다. 직장동료들은 함께 축적해온 세월이 보장해 준 우정을 무기로 줄곧 까롤리나의 곁을 지켜왔고, 가족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나. 한 명은 자신의 남편을 뺏어갔고, 나머지 한 명은 그 사실을 숨기며 까롤리나를 기만했다. 까롤리나의 엄마는 까롤리나가 인생의 중요한 단계에서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권을 박탈해버렸다. 그런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한 채 까롤리나는 철저하게 엄마의 욕망대로 삶을 살아왔고 이 역시 그녀를 불행한 삶으로 밀어 넣었다. 이 네 사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까롤리나의 이너써클(inner circle)에 속해있는 사람들, 즉 최고로 가까운 지인들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까롤리나의 최측근으로서 그녀에 대한 세세한 정보까지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해 왔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들의 배신과 기만, 욕망은 곧바로 까롤리나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할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를 미치게 하는 사람들은 평상시에 내가 믿음과 사랑과 신뢰를 아끼지 않고 주었고, 준 만큼 받았다고 믿었던 사람들 일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감정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면, 내가 기울인 만큼의 크기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나의 '이성을 몰수'하여, 나를 '정신적으로 아프게 하고', 내가 '합리적인 상태로 사고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 즉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에덴 정신병원은 정상이 아닌 사람들, 미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권위자에 의해 미쳤다는 인증을 받은 사람들일 뿐, 오늘도 우리 곁을 자유롭게 지나쳤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인증 없이 미쳐있는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미치겠다'란 말을 내뱉고 싶을 때에는 먼저 두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둘러보자.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에만 살짝 입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