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중력은 충분한가요?

탈룰라(2016)

by 무비 에세이스트 J

공중에 붕 뜨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이왕이면 슈퍼맨처럼 높이 날아올라 멋지게 공중에서 유영을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자체가 꿈속에서조차 꿈같은 일이었던지, 그저 공중에 떠서 익숙한 동네를 내려다보던 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어서 공중에 떠있다는 기분을 만끽했지만, 곧이어 갖게 된 높이에의 자각에 난 공포심에 사로잡혔고, 곧바로 아래로 추락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꿈을 꾸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명장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2013)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 영화 초반에 조지 클루니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황홀한 광경에 경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구 위에서만 사는 것이 당연한 우리로서는 몹시 궁금한 광경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내 발밑에서 나를 당겨주는 힘이 없어, 위아래의 구분이 없는 공간에서 무작정 떠다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무한한 공포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래비티라는 영화에서 얻어가는 감정과 감동은 엉뚱하게도 우주의 신비와 미지 탐험이 주는 흥분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마지막 몇 분을 제외하고는 내내 우주에서 사건이 벌어지지만, 놀랍게도 심장을 때리는 감동은 마지막 몇 분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나를 건드렸던 감동은 전혀 다른 배경의 영화인 탈룰라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영화 탈룰라는 2016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이다. 감독은 여성인 사이안 헤더이고, 주연 탈룰라 역에는 이제는 남자가 된 엘리엇 페이지 (당시에는 엘렌 페이지), 마고 역에는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에 빛나는 연기파 배우 앨리슨 제니, 캐롤린 역에는 타미 브랜차드가 각각 캐스팅되었다.


- 캐릭터 -


이 영화는 주요 등장인물 3명의 이야기가 하나로 엮여있는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주요 등장인물, 즉 중심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중요하다.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3명의 여자와 1명의 여자아기이다. 이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 여자는 탈룰라이다. 나이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일 것으로 추정되며, 허름한 밴에서 생활하고 있고 생존만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목표처럼 보인다. 두 번째 여자는 마고이다. 마고는 탈룰라와 2년 정도 같이 살다 말없이 떠나버린 남자 친구 니코의 엄마이다. 탈룰라가 니코를 찾기 위해 마고의 집을 방문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세 번째 여자는 캐롤린이다. 나이차가 나는 돈 많은 남편이 있고, 그와의 사이에서 이제 갓 한살이 좀 넘은 매디슨을 낳았다. 남편의 사랑이 식어버리자 관심을 받기 위해 아기를 낳았지만, 그조차 소용이 없자 알코올에 빠지고 육아를 등한시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요 등장인물 중 최연소인 매디슨은 이 세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사 한마디 없이 말이다!

662c32c1-4c76-4255-a1f3-83924ad5f1f6.pdf-0001.jpg 왼쪽) 엘리엇 페이지(탈룰라),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감독 사이안 헤더, 앨리슨 제니(마고), 타미 브랜차드(캐롤린)

영화는 각자 자신의 문제에 허덕이던 이 세 여자가 어느 날 매디슨이라는 한 점에서 만나 발생하는 일들을 진지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몇몇 장면을 표현하는 신박한 상상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적 대사가 아닌 직관만으로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세 여자와 그들의 공간-


이 영화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묶어서 하나로 만든 만큼 그 각각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되, 특별히 그녀들의 공간에 시선을 두려 한다.


탈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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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은 이렇다. 6살 때 이미 엄마에게 버려졌고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는 밴을 집 삼아 생활하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생각에 변화를 겪는 탈룰라이지만, 변화 이전의 탈룰라의 모든 것은 밴(van)에서의 삶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즉, 원하는 곳에 정착하고, 원치 않으면 언제든 이동 가능한 자유가 있으나, 언제든 이동 가능한 삶이 담고 있는 역설은 정착을 할 수 없고 따라서 누구와도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외로움을 상수로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인간의 필멸 성을 핑계로 주변과 애착관계를 맺고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그냥 내키는 대로 살면 된다고 하지만, 실은 그런 인간적 애착을 원하고 있는 모순을 끌어안은 채 살고 있었고, 탈룰라의 삶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모순을 탈룰라가 때때로 사무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관점으로 탈룰라를 따라가 보면, 그녀가 왜 니코를 찾아 나섰고, 매디슨을 데리고 가버렸으며, 은근슬쩍 마고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렀고, 무슨 생각으로 체포가 뻔한데도 병원으로 다시 돌아갔으며, 왜 체포되어 끌려가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이제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것이다.


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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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는 한마디로 허상과 동거하는 여자다. 남편이 다른 남자를 만나 그녀의 곁을 떠난 지 3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미시즈 무니라고 불리길 고집하며 남편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남편의 그림과 남편의 가구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작가이기도 한 그녀의 전문 분야는 전통적 관점의 결혼이어서, 자신의 책 사인회에서 전통적 결혼제도에 대해 억지 찬양을 하고 다녀야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몇 년째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나뿐인 아들도 그녀가 주는 부담에 못 이겨 그녀의 곁을 떠난 지 2년이 되었다. 아들이 가출하며 훔쳐간 신용카드를 정지하지 않은 덕분에 아들이 돌아다니며 카드를 쓸 때마다 문자를 받고 있다. 문자메시지를 통해 아들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고, 아이의 아빠와 결혼을 하는 것이 꿈이었던 관습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던 마고의 문제는, 바로 이 관습에 묶여있으나 현실은 전혀 관습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새로운 현실은 낡은 틀로는 가둘 수가 없고, 낡은 틀의 익숙함을 버리자니 용기가 나지 않아 시도를 못하고 있고, 이런 상태로 시간이 흐르니 서서히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고를 상징하는 공간이 그녀의 아파트이다. 아파트 자체가 남편과 지내던 시절 그대로 박제되어 있는 공간인데 이곳에 그녀의 급변한 상황을 꾹꾹 눌러 담고 있으니 모순에서 발생한 비극적 공기만 가득한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이런 마고가 현실에서 탈피해 영영 날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것은 당연하다. 탈룰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마고의 삶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빛을 영영 잃어버렸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캐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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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상반된 감정을 끊임없이 교차하게 만드는 캐릭터가 캐롤린인 것 같다.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로 연민을 느끼며 공감하다가도 동시에 무책임하고 자존감 없는 행동에는 동의가 안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 그녀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으나, 한창 꽃필 나이를 지나 신체적 매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한탄할 나이가 시작되었으며, 결혼하기 전 그녀의 집안이 내세울게 별로 없었기에 나이는 훨씬 많아도 돈이 많은 남편과의 결혼을 굉장한 성공으로 생각했던 것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캐롤린이란 캐릭터의 수준과 고민의 시작점을 넌지시 비춰준다. 그렇다면 캐롤린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녀가 머무는 호텔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 호텔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는 하나, 아무도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공간이다. 호텔의 급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돈이 많이 들고 화려한 곳이어서 가끔 머물고 싶지만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은 공간이 호텔이다.

캐롤린이란 캐릭터를 보자. 금발머리에 풍만한 몸매, 예쁜 얼굴과 미소는 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고 화려하나, 방종한 언행과 낮은 자존감은 그녀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마치 겉만 번지르르한데 실속 없는 관광지의 호텔 같은 느낌이다. 또한 호텔은 남편이 없는 동안 그녀가 집처럼 머무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호텔은 집이 아니고 집이 될 수도 없는 공간이다. 이런 호텔을 집 삼아 머문다 해도 어디까지나 주인이 아닌 방문자의 입장에서 한시적으로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어서 불안정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캐롤린의 결혼생활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 그녀의 곁을 떠날 것 같은 남편을 붙잡아 두고 싶어 아기까지 낳았지만, 정작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주인의식 없이 방문객처럼 행동하는 캐롤린. 어쩌면 남편은 캐롤린의 생각처럼 매력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이런 태도의 캐롤린에게 애정이 식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캐롤린에게는 호텔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 필요했고, 도구로서의 아기가 아니라 엄마라는 인식의 깨달음이 필요했다. 호텔이든 집이든 이 세상 어디에서든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서는 기간에 상관없이 자신이 주인임을 깨달아야 했다. 탈룰라가 매디슨을 데려가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호텔이 되어 그 호텔에 머물게 되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탈룰라와 마고가 공중으로 떠 오르는 장면일 것이다. 감독이 이 장면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을 탈룰라의 대사 "중력이 있어 땅에 붙어 다닐 수 있으니 다행이다"라는 부분에서 찾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진짜 질문은 이것이 될 것이다.


중력이란 무엇인가?



1. "내"가 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중력은 우리가 지구 위에 붙어서 살 수 있도록 지구가 질량(무게)을 가진 물체를 끌어당겨주는 힘을 말한다. 인간 역시 공중에 떠다니지 않고 땅 위에 붙어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중력 덕분이다.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인간을 붙잡아 주니 너무나 고마운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중력 때문에 우리는 지구 위에 붙들려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중력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 관점일 것이다. 중력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영화 속 인물들의 삶에 대입해보자.


영화 속 탈룰라는 어느 날 마고에게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자신을 붙잡아주는 중력의 존재가 고맙다고 말한다. 중력이 고맙다는 엉뚱한 이 말은 잠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밴을 타고 다니며 거취가 자유로운 그녀라면 그녀를 묶어 두는 중력이 오히려 달갑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탈룰라는 왜 중력이 고마운 걸까?

겉으로 보이는 탈룰라의 자유로운 생활에 그 역설이 숨어있을 것 같다. 그녀가 사는 밴에는 바퀴가 달려있어 어느 한 곳에 밴을 주차시켜도 그것은 한시적 정차일 뿐 정착이 아닌 것처럼, 그녀의 자유가 오히려 그녀를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게 하여, 공동체의 주변을 맴돌게 함으로써 그녀를 붕뜨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든 사람 사이에 살 수 있게 묶어주는 유일한 것이 중력이니, 그녀는 그 중력이 꼭 필요했던 것이고, 결국 그녀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이다. 탈룰라가 떠나버린 니코를 찾아가고, 매디슨에게 이끌리고 마고에게 머문 것은 탈룰라의 마음속에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착과 애정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마치 중력에게 이끌리듯 이들에게 이끌려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서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마고에게 중력은 그녀를 묶어두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없게 만드는 족쇄 같은 것이었다. 떠나 버린 지 3년이나 된 남편의 아파트에 머물며 여전히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불행하고 고독한 삶을 이어가고 있던 마고는, 탈룰라가 중력 때문에 날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만일 날아가게 된다면 자신은 뭐라도 붙잡고 날아가지 않겠다고 말할 때, 자신은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날아가 버리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을 묶어두는 중력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탈룰라가 그녀의 인생에 들어오고 자신의 삶을 냉철하게 인지하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을 공동체 안에 머물게 했던 것은 남편과 자식이라는 존재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의 무게였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공중으로 한없이 떠오르다 어느 순간 나뭇가지를 단단히 움켜쥐는 행동에서 보이는데, 이 장면에서 마고는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인지함과 동시에 자신이 받아야 할 중력을 당당히 자신의 무게로 받겠다는 의지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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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은 사회적 무게를 지니고 산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은 중력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력이 있어 정착이 가능함에 감사하지만, 이내 구속이라 여기며 불행해 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입장을 취하든 중력이 우리에게 작동하려면 우리는 무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무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무엇에 대한 무게인가?"


영화 초반에 니코는 탈룰라에게 아기도 낳고 집도 구해서 둘이 함께 터전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탈룰라는 모질게 거부하며 떠나버리라고 고함치고, 한밤중 차 밖에서 잠시 볼일을 보고 들어가려 하지만 니코가 안에서 문을 걸어버린 탓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그때, 갑자기 탈룰라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그대로 하늘 높이 사라져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탈룰라의 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왜, 이 장면에서 탈룰라는 공중으로 떠오르게 된 걸까?


이미 알고 있듯 중력은 질량을 가진 물체에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 장면에서 탈룰라는 자신의 무게를 잃어버렸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무게를 잃어버린 것일까? 인간이 지니고 다니는 무게는 어떤 무게일까? 타인과 다르게 작용하는 나만의 무게, 바로 존재의 무게인 것이다. 즉, 탈룰라는 자신의 존재의 무게를 잃어버려 더 이상 중력의 끌어당김을 받지 못해 공중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의 무게는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


사르트르(1905-1980)에 따르면 인간은 평생 자신의 존재 근거를 타자의 시선에 포착된 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격적 타인으로서의 타자가 없이 우리는 존재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즉, 자신의 존재의 무게를 인식하기 위해, 인간에게는 존재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타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룰라가 중력을 잃고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가버린 이유는 자신의 존재의 근거가 되어주었던 니코를 잃어버리고 홀로 남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무게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다. 하지만 그 무게에 대한 인식은, 나를 담고 있는 타인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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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1984년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처음부터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나누어진 4명의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가벼움을 참지 못해 무거움을 만들어 내지만, 무게를 느끼게 되면 그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영원한 순환적 운명을 지녔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은 미모와 지성을 지녔으나 딸을 잃은 아픔으로 인해 익숙한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간다. 자신을 잡아당기는 힘이 전혀 없는 그곳에서의 자유도 잠시, 자신의 생생한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다시" 지구의 땅 위였다. 두발로 땅을 딛고 서서 중력을 온전히 받아내고서야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 무게를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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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서 나는 나의 존재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가? 나의 중력은 충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