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려다 책장을 덮어버렸다.
글에 잡념이 섞여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따듯한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
그대로 주저앉아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내 눈에
머리카락 한 올이 눈에 띄었다.
되는 대로 열심히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떡하니 누워있는 작고 가는 머리카락 한올이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어떻게든 치우고 말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다가가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 너무 짧게 자른 손톱 때문이었을까.
이 작은 머리카락이 좀체 집히지가 않았다.
한쪽을 눌러 다른 쪽에 틈을 만들어 집으려고 해도
집었다 싶은 순간 들어 올리면
내 손과 허공사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오기가 발동했다.
꼭 들어 올리고 말 거야.
너 하나쯤 내 맘대로 못하는 게 말이 되니.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머리카락과의 사투를 시작했다.
끌어당겨도 보고
밀어서 손가락에 붙여도 보고
눌러서 잽싸게 들어 올리려고도 해 보았으나
결국 나는 머리카락을 잡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머리카락과 싸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메마른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어느덧 촉촉해진 웃음.
쉬운 게 하나도 없는 삶.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관대하지 못한 삶.
무언가와 공존한다는 충만함을 잊고 살아온 삶.
내려놓고 보내고 비워야만 하는 때를 번번이 놓쳐 버린 삶.
여전히 눈앞에 놓여있는
당당한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그의 작은 승리를 나의 큰 패배를 인정한다.
겸손한 그를 겸허히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