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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 에세이스트 J Aug 10. 2023

상상

비 내리는 파리의 밤

센강변의 가로등을 따라 노란 우산을 쓰고 걷는다

바람이 거세지도 

빗줄기가 두껍지도 않아

적당히 후두둑 소리를 즐기며 걷는 저녁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이 강변에

오래전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이 섞여 들어와

강물과 함께 흐른다


배가 고픈 걸까

아님 커피가 들리지 않은 빈 손이 어색한 걸까

알 수 없는 허기에 

발걸음이 느려진다


계속 걸어야 하는 이유가 뭐였지

잠시 멈춰 선다

알아들지 못하는 이국의 말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어느 영화에 나왔던 센강의 시인이 떠오른다

비가 오는 날에는 나오지 않는 걸까

그가 나에게 아무 단어나 하나를 던져보라고 하면

나는 어떤 단어를 던질까 잠시 골똘히 생각해 본다

그가 써줄 시를 궁금해한다


다시 강을 따라 걷는다

강을 바라본다

가로등 불빛이 일렁이는 까만 물결

그 물결에 마음 한 자락을 떼어 실어 보낸다


눈을 감는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집중한다

강은 흐르고

가로등이 손을 내밀어 나의 어깨를 감싼다

천지가 정적에 덮인다

온 천지가 숨소리하나 새어나가지 않게 입을 막아버린다


고요의 장막 그 무게가 버걸울 때쯤

장막을 비집고 걸어 나온다

눈을 가늘게 뜨고 두리번거린다

이내 들어오는 익숙한 조명, 익숙한 공간

하얗게 켜져 있는 노트북



나는 아무도 모르게 비를 타고 내 방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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