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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Nov 01. 2023

실수로 조종실 문을 연 승객의 최후


승객이 실수로 조종실 문을 열면 어떻게 될까? 물론 동네 편의점 문처럼 그냥 열리지 않는다. 조종실 출입문에는 광폭렌즈와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조종실 안에서 문밖으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유사시를 대비해 조종실 출입문은 자동 소총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방탄 소재로 만들어졌다. 이거 방탄 유리야 이 개XX야, 같은 드립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간혹 화장실과 헤깔려서 조종실 문을 열려는 승객이 있는데 비행 중 승무원이 아닌 사람이 조종실 출입을 시도하는 행위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중대한 항공 안전 위협 행위로 간주된다. 미국, 영국, 호주, 독일, 인도, 파키스탄 등과 같이 항공 보안 규정이 엄격한 국가에서는 출입이 인가되지 않은 탑승자가 조종실 출입을 시도할 경우 즉시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하게 되어 있다. 비행기가 착륙한 후 조종실 문을 열려고 시도했던 승객은 곧바로 대기 중인 공항 경찰에 인계 되어 조사를 받게 된다. 


요즘에는 그런 뉴스가 거의 없는데 1970년대에는 전세계적으로 50건이 넘는 하이재킹(비행기 납치)이 발생했다고 한다. 테러범들은 조종실을 가장 먼저 노렸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비행기 제작사는 문 앞에 부비트랩 플로어 설치를 고안했다고 한다. 객실 아래 화물칸에 감금실을 만들어놓고 테러범이 조종실 문 앞에 서 있을 때 기장이 버튼을 누르면 바닥이 꺼지면서 테러범을 감금실로 추락시킬 수 있는 장치였다. 

이미지 출처 : 책 <플레인 센스>

이 부비트랩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책 <플레인 센스>에 따르면 승객들을 잠재적 납치범으로 취급한다는 비판과 시스템 오작동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부비트랩에 걸려 몇 번이나 추락해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기장님 살려줘요!


승무원들도 매년 정기 교육 과정을 통해 테러 대응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교육에서 강조하는 건 승객의 안전을 위해 테러범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이후 은밀하고 신속하게 비상벨을 눌러 조종실에 객실 상황을 전달해야 한다. 비상 사태를 인지한 조종실은 즉시 당국에 보고한 뒤 당국의 지시에 따라 상황에 대응하는 게 기본 메뉴얼이다.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비상 사태에서 테러범을 도발하지 않으려면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절대 입밖으로 내서는 안되는 얘기가 있는데 바로 '종교', '정치'에 관한 것이다. 그렇지 그런 얘기 하면 안되지. 암 안되고 말고. 지당한 얘기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다가도 위험천만한 테러 상황이라는 게 참 우리네 평범한 일상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 들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종교 얘기, 정치 얘기는 삼가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식구들끼리도 어쩌다 한 번씩 명절에 모여서는 정치 얘기로 얼굴을 붉히는 게 한국이다. 부비트랩 버튼처럼 종교나 정치 버튼을 누르면 그 즉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마치 테러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기장님 살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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