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꼰대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난 얼마나 유연한 사람인 지 생각해 보곤 한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돼?”
입버릇처럼 이 말을 자주 하던 한 선배가 있었다.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 세상이 자신을 포함해 상식적인 다수와 비상식적인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이 선배는 자신의 가치, 기호, 정치나 종교 성향이 지극히 상식적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공유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생각은 비상식으로 치부했다. 종교가 없다는 나에게 매우 애처로운 시선을 보냈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정상과 상식적 인간에 대한 욕망은 관계 편중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뜻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잘생긴 사람들은 잘생긴 사람들끼리 어울려 다닌다. 난 도대체 어쩌다 왜 남편을 만났는가.
내년 4월이면 또 선거가 치러질 텐데 내년에도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후보들이 난립할 것이다. 이 역시 관계 편중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권자들의 생각과 달리 후보 당사자들은 대부분 당선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주변에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남들도 자신을 지지할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선거가 끝나고 생각보다 표가 안 나왔다고 실망하는 후보는 흔하지만, 생각보다 표가 많이 나왔다고 놀라는 후보를 찾기는 힘들다. 그리고 같은 일이 4년, 5년마다 되풀이된다.
우리의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도 주변 사람들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그 사람의 의식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돈 많고 가방끈 길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더 합리적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설령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평생 끼리끼리만 어울려 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은 편중될 수밖에 없다.
현대 경영의 구루로 불리는 오마에 겐이치는 인간을 바꾸려면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만나는 사람을 바꾸고, 사는 공간을 바꾸고, 쓰는 시간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사를 하기 좋은 시기란 집값이 떨어지는 시기가 아니라 내 생각을 바꾸고 싶을 때여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공간을 바꾸는 일은 부동산 투자나 자식 교육을 위한 삼천지교로만 등치되고 있다.
오늘은 10년째 거주 중인 낡은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고상한 심리학 어휘를 동원해 풀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