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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Dec 02. 2023

승무원에게 필요한 신체 조건

승무원에게 가장 필요한 신체 능력은 무엇일까? 답은 심폐지구력이다.


내 개인 의견이 아니라 회사 담당 주치의 선생의 말씀이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 신체검사가 시작됐다. 오전에 비행을 마치고 본사에 들러 간단한 신체검사와 인바디, 기초체력 테스트를 했다. 승무원의 체력 테스트 항목은 4가지다. 악력, 유연성, 근지구력 그리고 심폐지구력.


검사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이 진행됐다. 나이를 먹으니 슬슬 여기저기 삐그덕거리며 몸이 녹스는 게 느껴져서 내심 불안하던 차였는데 의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머 이게 다 뭐야. 사무장님 운동선수 하다가 승무원 하시는 거예요? 이런 결과는 근래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괜찮으시면 저희가 사무장님 인바디 DATA를 교육 자료로 쓰고 싶습니다. 승무원 직무에 가장 적합한 지표로 보이네요. 좀 과장해서 말하면 사무장님은 승무원이 되기 위해 태어난 분 같습니다. 같이 한번 보시죠. 우선 신체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나오네요. 오늘 측정한 기초체력 검사도 모두 표준 이상인 거 보이시죠? 그중에서도 이 심폐지구력 월등한 거 보세요. 골격근량 대비 체지방 비율이 아주 이상적입니다. 이 정도 체지방률은 남성들도 갖기 힘들어요. 세포외수분비율도 아주 좋은데 여기 기초대사량 높은 거 보이시죠? 이건 면역력처럼 신체 회복력에 영향을 주는 좋은 기능들이 아주 뛰어나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면 안 되지만 혹시라도 다치신다고 해도 남들보다 회복도 빨리 될 거예요. <무빙>에 나오는 류승용 배우처럼 빨리 되냐구요? 제가 그 드라마를 안 봐서 잘 모르겠는데 현실에서의 류승용 배우보다는 빠를 겁니다. 운동은 평소 시간 날 때 조금씩 하신다고 했는데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지 않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거든요. 아마 의식하지 않으셨겠지만 운동이나 식습관에 루틴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운동은 뭘 하든 꾸준히 하는 게 좋아요. 승무원분들도 운동 많이 하시잖아요? 헬스도 하고, 요즘에는 필라테스도 많이 하시던데, 한 3개월 하고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죠. 그게 다 근육이 없어서 힘든 거고, 그래서 근육을 만들려고 운동을 하는 건데, 근육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힘들다고 관두는 거죠. 필라테스는 안 하신다고요? 사무장님은 특별히 뭘 더 안 하셔도 됩니다."


내 입으로 이런 얘기를 옮기니 좀 쑥스럽긴 하다. 하지만 남한테 칭찬받는 걸 워낙 좋아하는 성격이라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얘기를 해주시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최근 누구한테 칭찬받을만한 일이 없기도 했고.


아무튼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지는 것 같다. 가슴에 조금이라도 통증이 있으면 유방암이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소화가 안되고 속이 계속 불편하면 위장에 큰 탈이 난 건 아닐까 걱정한다. 두통이 쉬이 가시지 않는 날에는 머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든다. 이런 와중에 운동선수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으니.


의사는 특별히 심폐지구력을 강조했다. 근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심폐지구력이라는 것이다. 승무원들의 체력 검사 결과에 따른 부상(질병) 정도를 추적 조사한 연구가 있었는데 심폐지구력이 높은 승무원일수록 부상이나 질병이 적었고 근무도 오래 했다고 한다.


내 체력 관리 비결은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운동을 하는 것이다. 생활이 불규칙적이다 보니 비싼 돈 들여서 헬스장 같은 걸 끊기는 좀 아깝다. 대신 집에서 틈틈이 플랭크를 하고 버피 테스트를 한다. 또 한 가지, 비행을 갈 때는 운동복을 꼭 챙긴다. 승무원이 묵는 숙소가 호텔이기 때문에 크든 작든 헬스장이 있기 마련이다. 매번 운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운동복을 챙기면 어떻게든 운동을 할 확률은 높아진다.


예전에 뉴욕타임스 찰스 두히그 기자가 쓴 <습관의 힘>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운동을 습관으로 만든다고 치면 매일 새벽에 체육관에 가서 2시간씩 땀을 뻘뻘 흘리는 걸 목표로 삼으면 습관이 되기 어렵다고 한다.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행동의 큰 덩어리를 잘게 쪼개고 가장 쉬운 단계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나처럼 캐리어에 운동복을 챙기는 식으로 말이다.


집에서라면 매일 그냥 운동복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꺼내 놓는 게 트리거가 될 수 있다. 남편의 경우 주말이지만 헬스장에 꼭 가겠다고 결심한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복부터 꺼내 입는다. 물론 바로 운동을 가는 건 아니다. 하루종일 운동복을 입은 채 밥 먹고, TV 보고, 소파에서 뒹굴거린다. 저 인간이 언제 나가려고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돌아보면 어느새 나가고 없다.


해외 숙소에 있을 때는 '헬스장 문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옷까지 챙겨 왔으니 그냥 헬스장 입구까지만 가보자고 나 스스로를 얼르고 달래는 것이다. 문만 열어 보고 분위기가 험악한 것 같으면 그냥 돌아오자, 컨디션 별로지만 자전거만 10분 타고 오자, 뭐 이런 식으로 엄마들이 애들 돈까스 사주면서 치과 데려가듯 나 자신을 얼르고 달래서 헬스장 입구까지만 간다.


거기까지만 하면 끝이다. 일단 헬스장에 들어가면, 애초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게 언제였냐는 듯 복근 30개를 더 쥐어짜 말어를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신체 나이 20대 후반에 빛나는 40대 아줌마의 자기 자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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