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되는 법
그래서 결국은 하나가 되는 법
21년 7월의 일기
직업을 여러 번 바꾼 것을 오랫동안 불안해했다. 사람들은 회사에 취직해서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꾸준히 전문성을 쌓던데 나는 왜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하지 못할까, 혹시 사회 부적응자는 아닐까 걱정도 했다.
몇 년이 지나자 점점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유행처럼 번져 기사에서도 이런 현상을 다루는 시대가 왔다.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어쩌면 저런 사람들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나도 이상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또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안다. 내가 왜 메뚜기처럼 이 일에서 저 일로 뛰어다니는지 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는 아마 나를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서 일이란 어려울수록 의욕이 생긴다. 내게 있어 직업의 끝이란,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목적한 바를 이룬 그 순간이다.
애초에 개발을 시작했을 때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걸 운영하는 것이 내가 목적한 바였다. 개발자로 일하다 보니 웹이든 앱이든 작은 규모라면 내가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고용해서 웹페이지를 만들게 된다면 요구사항을 작성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고 상대가 하는 설명을 알아들을 정도가 되었다. 해외로 나가서 프리랜서 개발자가 되겠다는 목표도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창의적인 작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건 남의 일을 받아서 하는 거라는 걸 그때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요가를 시작했을 땐 시기가 맞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 요가는 '운동'이었다. 지금처럼 힐링이나 명상의 도구가 아니라. 명상을 한다고 할 때 주변에서 나를 종교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고, 인도에서 요가를 배워왔다고 할 때는 특이하다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거나 채식이 뭔지 알고 있지만 그때는 채식을 하는 내가 상당히 까다롭고 유별난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특히 카페에 가서 빨대를 사용하는 게 내키지 않아서 스테인리스로 된 빨대를 가지고 다녔었는데 주변에서 이를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에 재취업하고는 두세 달에 2-3주씩 해외출장을 가야 했는데 정말 즐거웠다. 본사와 다른 지사의 분위기가 좋았고 더 수평적인 문화에 마음이 편했다. 내가 만든 걸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는 것도 좋았고 매일 영어를 쓸 수 있다는 것도 행복했다. 그만뒀던 이유는 업무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만들면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그게 내가 원하는 방향의 영향인가?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회사의 비전을 읽어봤다.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라는 목표를 읽고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고 연봉을 줄이면서 다시 초보가 되어 영상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이 계속 머리에서 웅웅댔다. 회사에 다니면서 영상제작을 배웠고 취미로 영화도 찍었다. 이를 통해 내가 남들에게 보일 수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이 일 저 일 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모든 활동은 결국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나는 이 모든 일의 통일성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조율하며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혼란스러웠던 시간 내내,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길 선택한 과거의 내게 고맙고
긴긴 시간 후에 내가 흘러온 지난 길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 현재의 내게도 고맙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