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친절보다 현명하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어둑어둑한 저녁, 날씨가 좋아지면서 길거리에 사람이 많아졌다. 삼삼오오, 오손도손 저녁 먹으러 가는 즐거운 얼굴들이 보인다. 기다려지는 저녁 약속은 무슨, 즐거울 것 하나 없이 헬스장으로 향하던 나도 주변의 활기찬 분위기에 덩달아 미소 짓게 된다.
...... 어라?
그런데 무언가 심상치 않다. 정겨운 거리 정중앙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주저앉아 있는 검은 물체가 눈에 띈다.
무슨 일이지?
이제 보니 거리의 웃음꽃 핀 얼굴들도 검은 물체를 인식한 듯 했다. 보지 못 한 척, 별일 아닌 척 그 옆을 지나가면서도 적잖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뒤돌아서 한참을 지켜보는 아줌마 두 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건조한 눈빛으로 멀찍이서 쳐다보는 아저씨, 팔짱을 낀 젊은 두 여성은 서로의 귀에 속닥거리며 검은 물체를 곁눈질한다.
다들 뭐 구경났어?
검은 물체와 점점 가까워지고 상황 파악이 되면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봤는데 못 본 척 대수롭지 않게 그 옆을 지나왔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마음 속 갈등이 얼마나 요동쳤는지 모른다. 괜한 일에 엮이지 않게 아주 잠깐 순간의 감정을 모른 척 넘겼으면 될 걸, 누군가는 내게 오지랖 부리는 버릇 좀 고치라고 했었던가?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결국 검은 물체로 발걸음을 돌렸다.
넘어지신 것 같은데 좀 도와드릴까요?
손 내미는 일조차 망설여지는 세상이다. 나 역시 돕겠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이미 후회라는 감정을 여러 번 경험했다. 막상 손은 내밀었는데 상대방의 눈초리가 꽤나 날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분은 나를 거절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몇 분이라도 빨리 사람들의 눈초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 나로 인해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임을 다시 한 번 깨달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여러 번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들으며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무턱대고 돕는 것은 실례라고 배웠다.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돕겠다고 다가가는 것은 기분 나쁠 수 있다고. 이 때문에 나 역시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었다. 다만 그 분에게 불필요하게 집중되는 시선이 불편했고, 그 분이 우리 회사 사원증을 매고 있는 것을 알고도 그냥 내 갈 길 가는 것이 그닥 내키지 않았다.
이제 그만 가세요. 좋은 밤 되세요.
그 분은 따뜻하게 고마움을 표현하려 했겠지만 사실 그의 마지막 말은 꽤나 차가웠다. 내가 예민할 수도 있는데 돕고도 찝찝한 마음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쩌면 그 분에게 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비춰졌을까. 내 안의 불편함을 참지 못 하고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 게 너무 배려심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보다 존중되는 사회에 살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다. 타인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과 친절한 마음이 왜곡되어 전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선뜻 호의와 친절을 베풀기 어렵다는 거. 서로에게 관심 갖는 것이 꺼려지는 세상, 씁쓸하게도 점점 더 각박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도와주고 누명 쓰기'라는 나무 위키 페이지가 있을 만큼 남을 돕고도 오히려 피해 보는 일이 많은 세상, 이런 세상에서는 불의를 봐도 그저 내 일 아니니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넘어가는 편이 현명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런 건조한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온정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정 있는 사회면 좋겠는데, 그래야 세상 살 맛이 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