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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층간소음 Mar 21. 2024

직장을 나오고 비로소 숨을 쉬게 됐다

남들 다 하는 거 혼자 못 버티기

"남들 다 잘만 하는 걸 왜 너만 못 버티니?"

애석하게도 이건 직장생활 내내 내가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내 나름의 힘내라는 응원이었는데, 직장을 그만둔 후 돌아보니

자기학대에 가까웠다.

밑도 끝도 없이 '내 돈 받고 살면 감사한 줄 알아'란 한줄의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대표의 얼굴에 노트북을 던질 뻔 한 날,

나는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제가 이상해요. 원래 잘 참았는데 오늘은 대표님 얼굴에 노트북을 던질 뻔 했어요"


상담사는 나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꺼내게끔 대화를 이어가더니

문제의 본질이 엄마와의 관계에 있다고 했다.


엄마. 그녀.


내 엄마는 내가 6살때 부터 20년 넘게 남편을 대신해 집안의 가장으로 살았다.

12시간씩 공장에서 화장품을, 휴대전화 부속품 납땜을, 검사를 하며 하루를 마치면 집에 와

술에 절은 남편의 밥상을 차리고 집을 치웠다.

집엔 이따금 깨진 그릇이, 초록 술병이 나뒹굴었는데 그걸 버리는 것도 엄마 몫이었다.

다시 아침이 되면 고등학생인 내 아침밥을 차려주고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그때 난 오전 7시 반에 집을 나섰는데 말이다.


아무도 10대 시절의 나에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난 엄마를 보며 인생은 고단한 것임을, 나를 갉아먹어야 먹고 살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런 나에게 대표의 막말 즘은 별 것 아니어야 했다.

먹고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라 스스로를 자위하고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돈으로 위로를 받아야 했는데, 그래야 했는데.


몇번의 상담 끝에 나는 남들은 잘만 버티는 직장생활을 끝내 혼자만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머릿속에 채소 가게에서 카운터를 보는 엄마가 맴돌고

동시에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우습게도 몸은 오랜만에 깊은 숨을 쉬는 것처럼 개운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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