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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층간소음 Apr 17. 2024

21살에 독립해 평화를 찾았다

가정이 불행한 사람들에게 

부천은 도시와 시골 그 어디쯤에 있는 공업도시였다. 

서울과 가까웠지만 서울과는 다른 풍경이었고

낮은 건물 사이로 공장들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기는 대체로 나빴고

그런 와중에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논과 밭이 주를 이뤘다.

여름이면 거름으로 쓰는 동물의 대변 냄새가 주변을 휘감았다.

점심 시간이 되면 같은 공장 점퍼를 입은 언니 오빠들이

줄지어 나와 함바집에 갔다가 이를 쑤시거나 담배를 입에 물고 나왔다.


그런 것들은 사실 별 것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집이었다. 

매일 술을 마시는 아빠와 매일 짐승처럼 절규하는 엄마 사이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학대였지만 나도 나이가 들고 보니

부모도 유약한 사람이기에 지난 날 그들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집을 나온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집을 나오고 싶었지만 자금이 없어

절망하던 차였다. 직장 이슈로 형제가 독립을 하게 됐다. 

나는 그 집에 놀러 간다는 명분 하나로 형제의 집에 들렀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돈이 없는 대신 청소를, 빨래를, 음식을 하며

내 나름대로 그곳에서 적응했다. 


놀라운 변화는 한두개가 아니었다.

집에선 하루가 다르게 싸우던 우리가

함께 좁은 원룸에 지내면서는 단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말려줄 사람도 없이 싸우다가

서로를 공격할까봐 두려워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언컨데,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맞이한 가장 첫번째 행복이었다.

평화라는 것은, 맛본 이후로는 놓치기 싫은 것이 됐다.


감사하게도 형제는 결혼으로 집을 떠나며 자신의 원룸 전세금을

그대로 두고 떠난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시절이 변하며 가끔 그것을 잊어버리지만, 이따금 생각하면

형제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껴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그때의 은혜를 생각하면 어떤 것도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느낀다.


그만큼 그 작은 공간은 숨통을 트여줬다. 

내가 주변에 가정이 불행한 친구와 동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집을 떠나 공간을 분리하고

그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지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21살, 술 취한 아빠와 괴성을 지르는 엄마 옆에서 탈출하고

공장의 매연같이 회백색이던 나의 인생은 놀랍게도 정상 궤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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