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빵집까지
집이 완전히 준비되기까지 비즈니스 호텔에서 두 달간 묵을 수 있도록 회사에서 지원을 해줬다. 예전에 대학생 인턴 시절, 강남 호텔에 장기투숙했던 외국인 CFO 가 떠올랐다. 호텔에서 살면 누가 청소도 대신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맛있는 조식도 매일 먹을 수 있고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정도의 호텔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좋았다. 인당 15유로나 하는 유기농이 가득한 조식 부페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우리 점심 안 먹어도 되게 최대한 배 채워" 라며 실컷 먹었다.
하지만 사흘쯤 지나자 조식의 설렘은 급격히 식었다. 생각지 못하게 가장 불편했던 것은 하우스키핑이었다. 10시면 하우스키핑이 와서 방을 비워줘야 했다. 고양이 니모의 화장실 모래 때문에 하루에 한 번은 청소를 해야 했는데 방 비우는 일이 꽤 번거로웠다. 남편은 아킬레스건 수술 후라 발끝부터 무릎까지 두꺼운 보호대 신발을 신었고, 목발을 짚어야 했다. 시내 구경을 나가도 몇 걸음 걷고 쉬고 반복하다 보면 둘 다 진이 빠졌다. 케이지속 니모는 너무 무거웠다. 우리는 케이지에 니모를 넣어서 호텔 로비에 앉아 있거나 하우스 키핑을 이틀에 한 번꼴로 건너뛰고 청소 대신 수건만 받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남편이 잔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컹컹대는 기침으로 바뀌었다. 아직 보험카드도 없고 병원을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밖에서는 괜찮았는데 호텔방 안에만 들어오면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우리는 결국 2주 뒤, 호텔생활을 정리하고 빈집에 가서 생활하기로 했다.
우리 집을 확인하는 첫날 - 알고 보니 3층이었다.
나는 도착해서 처음 집 보러 간 날까지 우리 집이 2층인 줄 알았다. 계약서에 2층이라고 쓰여있으니까. 알고 보니, 독일은 지층이 0층부터 시작했다. 우리 집은 0층부터 시작해 2층이라서, 한국 기준으로는 3층이었다. 계단이 생각보다 높았지만, 집은 동영상으로 본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도착 전 인터넷에서 독일은 이사 갈 때 조명을 떼어간다는 글을 봤다. 정말로 우리 집에는 기본 알전구 한 개만 달려 있었다. 이미 조명을 한국에서 새로 사서 컨테이너로 보냈어서, 새 조명이 도착할 때까지 책상용 스탠드와 알전구 한 개로 버텼다. 독일 집은 예쁜 헤링본 무늬 원목 나무바닥이었다. 여름이었지만 냉기가 올라와서 바닥에 앉을 수 없었다. 즉시 아마존에서 캠핑매트와 요가매트를 주문해서 그 위에서 잤다. 나중에야 에어매트리스라는 훨씬 좋은 대체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작에 알았으면 그걸 사서 유용하게 썼을 텐데 그때는 전혀 정보가 없었다. 또 하나 발견한 독일집의 특이점은 붙박이 신발장이 없다는 점이다. 신발장을 가구처럼 따로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웠던 식탁 - 앞으로는 무조건 집안배송
바닥에서 밥을 먹기가 불편해서 가장 먼저 식탁을 주문했다. 배송 옵션이 두 종류였다. 집 대문 앞까지 배송은 무료이고, 집 안까지 배송 비용은 110유로. 110유로를 아끼려고 집 앞 배송으로 시켰다.
일주일 뒤, 식탁이 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크고 무거웠다. 식탁 상판무게만 60킬로였다. 남편이랑 둘이서 3층까지 올려야 한다. 1층 오르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힘이 풀릴까 봐 숨을 참아가며 한 칸씩 올리고, 세 칸쯤 오르면 숨이 차고 손가락이 아파서 쉬기를 반복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어떻게 하지? 진짜 더는 못 옮기겠는데. 하루에 한 층 씩 올려야 하나. 식탁의 무게를 어깨로 올리는데, 세상의 지붕을 떠받드는 아틀라스 같다는 생각이 들고,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100유로 내고 할걸.
계단에서 계속 두런두런 소리가 나니까, 아래층 사는 집주인의 어머니( 우리는 그냥 주인 할머니라고 부른다)가 나와보시더니, 큰소리로 "유스틴! 이리 잠깐 나와서 이것 좀 같이 옮겨!" 하셨다. 집주인 내외가 같이 나와서 도왔고, 성인 4명이 옮기니까 5분도 안 걸려서 3층 거실로 식탁을 옮길 수 있었다. 식탁이 양탄자처럼 슝 하고 순식간에 계단을 날아가듯 통과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앞으로 무거운 가구는 무조건 집안까지 배송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중고차 구매 - 독일은 예약의 나라
독일인 친구가 중고차 어플을 알려줬다. 예산, 차종을 입력하면 딜러샵 정보가 쭉 떴다. 가장 매물 많던 딜러가 벤츠 박물관 옆 건물에 있었다. 가서 직접 보고 딜러랑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에 벤츠 박물관으로 향했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여전히 절뚝이는 남편과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며 세 시간 만에 중고차 대리점 주소에 도착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벤츠 박물관 안내센터에 가서 "중고차 구매 상담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했더니, 리셉션 안내원이 어이없어다는 표정으로 "여기는 그런 곳 아니에요. 저기 코너 돌아서 멀리 걸어가 보세요. “
안내원이 알려준 쪽으로 가보니 중고차 대리점 간판은 있었는데 차만 잔뜩 세워져 있고 사람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누가 사무실에서 나오길래 물어봤다. "여기 중고차 대리점 맞나요? 상담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예약 안 하면 차를 볼 수 없어요. 미리 원하는 차를 확인해서 담당 딜러랑 약속 잡고 오세요 “ 그제야 알았다. 독일은 '예약의 나라'라는 것을.
허탕치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데 하필 갑자기 흐려지더니 비가 내렸다. 쫄딱 비를 맞고 다시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집에 왔다.
이후 중고차 어플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의 차를 찾았고, 튀빙겐까지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기나긴 여정 끝에 드디어 우리 차를 받아왔다.
9월 말 드디어 컨테이너가 왔다.
드디어 한국에서 사 온 예쁜 조명을 설치할 수 있다. 알전구여 안녕.
조명을 달려고 봤더니, 전기 스위치가 어딘가 이상했다. 급히 정보를 찾아보니 우리 집은 디밍 라이트여서 한국에서 사 온 LED 조명은 사용할 수가 없는 집이었다. 디밍 조명이 뭐냐면, 한번 누르면 불이 커지고, 조명 버튼 위쪽을 길게 누르면 밝아지고 아래를 길게 누르면 어두워지는, 밝기 조절이 가능한 조명 시스템이었다. 3개월 기다린 보람이 없었다. 결국 OBI(독일의 인테리어 매장)에 가서 새 조명을 샀다.
분리수거 - 내게는 너무 소중했던 겔버 삭
집에서 생활하면서 쓰레기 처리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지?
컨테이너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 집에는 엄청난 양의 박스와 스티로폼이 있었다. 박스는 종이니까 초록색 종이 상자에 버리면 되는 건 확실했는데, 재활용 쓰레기 (플라스틱, 철, 비닐)는 정부에서 정한 노란색 큰 비닐봉지(겔버 삭, Gelber Sack)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 인터넷 검색해 보니 주민센터나 슈퍼마켓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데, 실제로는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시내 주민센터에 갔더니, "다 떨어졌으니 다음 주 수요일에 새벽에 오면 있을 수도 있다" 하여 그다음 주 수요일 새벽에 갔지만, 여전히 상자는 비어있었다.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노란 봉지 어디 가서 구했는지. "슈퍼 가서 달라고 하면 돼. 우리 집에 많으니까 한 봉지 줄게." 너무 고마웠다. 집주인에게서 받은 노란 봉지를 아껴가며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슈퍼에 내 앞에 선 사람이 계산원에게 "Gelber sack, bitte"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계산원이 계산대 밑에서 노란 봉투 두루마리 여럿을 꺼냈다. 기회를 놓칠세라, 나도 노란 봉지 달라고 했다. 어느 날은 슈퍼마켓 문 앞에 노란 봉지 두루마리가 가득 든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두루마리 여섯 개를 장바구니 가득 집어왔다. 그날부터 우리 집에는 노란 봉투가 넉넉했다.
장보기
지금은 슈퍼에서 장 보는 데 10분이면 충분하지만 독일에 온 지 한 반년이 되기까지 나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동네 대형 마트를 한 시간씩 배회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보험사도 종류가 너무 많고, 인터넷 서비스, 휴대폰 통신사도 옵션이 너무 많았다. 어떤 브랜드를 사람들이 제일 많이 써요?라고 독일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 좋아서 그런 건 없어. 그냥 제 마음에 드는 걸 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많은 동료들에게 어떤 걸 쓰냐고 직접 물어봐도 다들 사용하는 서비스 회사, 브랜드가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세제도 종류가 너무 많았다. 설거지용으로 그냥 흔한 퐁퐁 같은 세제를 사고 싶었는데, 세제 섹션이 너무 컸다. 독일어 단어를 모르니까, 구글 번역기로 사진 찍어 영어로 확인해서 물건을 샀기 때문에 보통 DM (올리브영 같은 드럭스토어)이나 슈퍼마켓에 가면 한 시간은 기본이었다.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은 핸드폰 인터넷이 먹통이었는데, weich Käse의 weich 가 '부드러운'이라는 의미를 모르고 weiß (흰색)으로 착각해서 잘못 사간적도 있었다. 비슷하게 보여도 완전히 다른 뜻이다. 치즈 구역에서 이 두 단어를 구분 못 하면 일반 치즈 대신 크리미한 스프레드를 사게 된다.
요리용 생크림을 사려다가 Schmand (사워크림) , Quark (치즈와 요구르트의 중간)을 실수로 산적도 있었다.
감자의 나라답게, 감자의 종류도 다양했다. 알감자 같은 작은 감자, 쫀득한 감자, 쪄먹으면 파실파실한 감자, 껍질이 노란 감자 등 감자하나 고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상하게 생긴 채소도 많았다. 펜첼, 아티초크, 하얀 치커리는 생전 처음 보는 채소였고, 대파도 한국 대파보다 더 크고 굵었고, 한국 대파보다 가늘고 쪽파보다 굵은 파가 있었다. 양파도 요리용 양파, 스테이크용 양파, 자색양파, 길쭉한 양파 – 살림 경험이 별로 없는 나에게는 새로운 정보와 경험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들어 신기하고 재미있는 마음과 여기서 어떻게 적응해서 사나 하는 부담감이 뒤섞였다.
그래도 다행히 슈퍼에 가면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빵도 사고, 치즈도 사고, 한국에서 본 적 없던 다양한 식재료를 한국식 양념으로 요리해서 먹었다. 다양한 치즈, 소시지, 과자 등등 하나씩 시도해 보았다.
독일 사람들이 의외로 꽤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슈퍼마켓에서였다. 뭘 사야 하나 한참을 진열대를 서성이면 몇몇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하냐"라고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맥주 코너를 보고 있을 때는 "이 브랜드 맥주 먹어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맥주야" 라며 추천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할인행사를 하는 제품을 살 때는 계산원이 "이거 1개만 더 사면 2 플러스 1이니까, 1개 더 사는 것이 이득이다"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외식
몇 달 지나고 보니 외식이 하고 싶어 졌다. 외식을 하고 싶은데, 메뉴를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팁은 어떻게 줘야 할지 열심히 검색하고 주변 독일 사람들에게 물어서 정보를 수집했다. 무엇보다도 예약을 해야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는데 지금처럼 구글로 온라인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 아직 없었다.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데, 독일어가 서툴러 예약이 어려웠다.
매일 산책 겸 시내에 가서 레스토랑 앞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뭐 먹는지 지켜봤다. 한 네다섯 번 밖에서 지켜보고,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우리가 독일어를 잘 못하는 것을 눈치챈 점원은 영어 메뉴를 갔다 줬고, 그렇게 우리는 첫 외식을 했다. 이후에 다른 음식점에는 영어 메뉴판이 없으면 구글 번역기로 대충 재료를 확인한 뒤 슈니첼이나 zweibelrostbraten을 시켰다. 그러면 맛에 대한 큰 실패 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빵집 - 문턱을 넘기까지 1년이 걸렸다
독일에 오기 전 막연히 유럽 영화처럼 아침 출근길에 빵집 사장님과 인사하며 커피와 크루아상을 테이크아웃하고, 꽃집 사장님과 '굿모닝' 인사를 나누는 유러피안 라이프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빵집 사장님과 인사하기 위해서는 일단 빵집 안에 들어가야 한다.
빵집의 문턱은 레스토랑보다 높았다. 독일 친구집에 가서 빵집에서 사 온 갓 구운 빵을 처음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친구에게 빵 이름을 물어서 핸드폰에 저장했지만 빵 이름은 음식점 메뉴보다도 더 복잡했다. 진열장에 빵 이름이 쓰여있지만, 일단 너무 멀리 떨어져서 잘 안보였다. 점원이 무엇을 드릴까요 물어보면, 갑자기 뇌에 정지가 와서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손짓으로 대충 빵을 사서 집에 돌아오기를 몇 번. 그래서 1년 가까이 Aldi라는 슈퍼마켓 빵 진열 코너에서 빵을 사 먹었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서 빵 이름표를 천천히 읽어가며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 독일 생활에 자신감이 좀 생기고 나서, 다시 빵집에 갔다. 예전만큼 두렵지 않았다. 어떤 점원들은 영어도 능숙했다. 어떤 때는 내가 독일어로 물어봐도 영어로 답하기도 했다. 그 후, 코로나로 재택근무하는 동안 매일 아침 우리 집에서 5킬로 떨어진 빵집에 뛰어가서 빵을 사서 돌아오는 것이 나의 하루시작 루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