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10월 1일 국군의 날. 처음으로 영어를 접한 이후, 내 꿈은 영어를 쓰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영어 쓰는 삶을 살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고교시절 장래희망은 외교관이었다. 외교관이 되어서 국제기구서 일하면 되겠다 싶어서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다. 이후, 외교관이 되기 위한 현실의 벽이 꽤 높다는 것을 알고 취업준비로 방향을 틀었다.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소위 „미국병“에 걸려서 미국에서 살고싶다는 열망이 더욱 강렬해졌다. 취업 준비 때도 싱가포르, 홍콩에 있는 금융회사에 지원하여 최종 인터뷰까지 갔으나 결국 떨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떨어지길 천만 다행이다. 금융계와 나는 적성 상, 정말 맞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을 하고, 업무적으로 아시아 지역본사나 글로벌 본사의 싱가폴, 영국, 미국 등 외국인들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사람들처럼 글로벌하게 일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대기업에 다닐때는 해외 법인 인사담당 주재원으로 갈뻔 한 기회가 두어번 있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무산되었고 직급이 점점 높아지면서 해외근무는 나와는 먼 일 같았다. 그저 글로벌 프로젝트로 해외 출장을 주기적으로 다니고, 업무적으로 영어를 쓰는데에 만족했다. 게다가 서른 다섯에 조금 늦게 결혼까지 하면서, 해외 근무는 그냥 20대 시절의 꿈이 되었다.
기회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다. 지금의 회사(독일계 글로벌 회사)에 입사한지 한 2년쯤 되었을 때, 새로 부임한 본사의 글로벌 hr Vice President 가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간 나와 긴밀히 일했는데 갑자기 내게 물었다. 혹시 독일 본사에 와서 일해볼 의향이 있는지, 독일어를 미리 공부할 의향이 있는지. 나는 당연히“ yes“ 라고 대답했다.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크게 기대하지는 마. 쉬운 일은 아니라서 나도 장담할수는 없어“
그 다음날 곧바로 남산에 있는 독일 문화원 어학강좌를 등록하고 취미삼아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고, 확실하지도 않은 본사근무기회를 위해 독일어를 꾸준히 공부하기엔 회사일이 너무 바빴고, 남산 독일문화원은 너무 멀었고, 주말은 너무 짧았다.
그로부터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감감 무소식이길래 사실상 포기상태였다. 당시 한국/일본 담당하는 North Asia cluster HR 역할도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부든 외부든 경력 상 새로운 챌린지를 모색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한국/일본 인사 총괄인데, 내가 포지션을 바꾸는건 여러모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겠지. 임원자리를 그냥 뚝딱 하고 만들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잊고 지내던 중, 2021년 1월. 본사에서 나에게 유럽 인사총괄 포지션을 제안했다.
너무 좋은 기회였다. 유럽 인사총괄은 생각치도 못했다. 동시에 수많은 걱정이 몰려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독일가서 살 수 있을까? 지금의 한국 사장님한테는 뭐라고 어떻게 말하지? 만약 지금 본사로 가면 나중에 한국 돌아올 자리가 없을텐데? 아 근데 남편 회사는 어떻게 하지?'
가장 큰 고민은 남편의 커리어였다. 남편도 임원 승진을 앞두고 있었는데, 우리가 독일에 가면 남편은 한국의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에서 새로 취업을 해야한다. 공대를 나왔지만, 아무리 독일이 '엔지니어의 나라' 라지만, 연고없는 외국인이 독일에서 취업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할 수 있을까?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남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나만 독일 가서 3년만 일하고 돌아올까?'
거실 벽 가장 넓은 공간에 SWOT 분석을 했다. 한국에 둘다 남는다. 나만 독일에 가고 남편은 한국에 있는 다. 둘다 독일로 간다. 장점, 단점, 위험요소 등.
장거리 부부는 옵션에서 제외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살아야한다. 나는 기러기 부부 생활의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어떻게 할까? 나 독일 갈까? 근데 당신 커리어 괜찮겠어? 나중에 나 원망하면 안되니까, 본인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일주일 뒤에 나한테 알려줘.“
며칠 뒤 남편이 말했다. "당신에게 너무 좋은 기회야. 가자."
한국에서 내가 보고하던 독일인 사장은 나에게 "2-3년만 한국에서 함께 일하면 더 좋은 기회를 본사에 만들어주겠다“ 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눈앞의 기회를 잡는것에 끌렸다. 이미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나이 서른 아홉. 우리는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