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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쁘다 Apr 05. 2018

매일같이 자라는 손톱 달

[일주일에 한번씩 경건하게]



내 손은 짧고 뭉툭하다. 남들처럼 네일 아트를 하기에 매우 어색한 그런 손이다. 개인 취향이기도 하지만 그런 손을 가졌음에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손톱 달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매우 바짝 잘라낸다. 누구는 그런 내 손가락을 보고 마디 한마디가 잘린거 같다며 손톱이라도 잘 가꿔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못나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손톱에 화려한 장식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꺼려졌다. 때문에 네일 아트는 하지 않지만 바짝 다듬어 강화제만 바르는 정리에 만족한다.


그런데 한 때는 매주마다 오는 손톱 정리 시간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손톱이란 것이 왜 그렇게나 잘도 자라나는지 마치 잠시 한 눈 판 사이를 노리는 듯 끊임없이 자라고 만들어지는 손톱들이 너무나 싫었다. 비단 손톱만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며 배변 활동이며 내 안에는 끝도 없이 무언가를 생성하고 소비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무수히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에 질려있는 상태였다. 개인의 최소한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듯이 생겨나는 사람들, 차량들,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 백화점, 마트를 가면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들, 장 한번 보고 오면 끝도 없이 나오는 포장지, 비닐,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간판과 네온사인들... 유일하게 좋아하는 서점에도 미친 듯이 광고하고 쌓아놓은 책들을 보고 이내 모든 것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또 하얗게 자라 있는 손톱을 보고 앞으로 자라 날 손톱까지 다 파헤쳐 잘라내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황금을 낳는 거위에 나오는 어리석은 농부처럼 말이다. 손톱을 자르는 내내 화가 나고 짜증이 일었다.

그러다 문득 모든 것을 멈추고 나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손톱이 자라지 않고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고 배변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멈춰진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무척이나 지쳐있다는 걸 알았다. 살아남기 위해 잠시의 쉼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주변에, 나에게 화가 단단히 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계속 걸음을 옮겨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이 우리 전부를 군림하는 것 같았다.

때는 서른 즈음이었고 주변은 내게 결과를 내보이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세상의, 사회의 불만을 나는 그만 보잘것 없는 나의 짧고 뭉툭한 손톱에 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지금 나의 손톱은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듯 또 하얗게 손톱 달이 올라왔다. 이제는 그때의 비참함과 처연함은 사라지고 내가 또 이만큼 살아왔구나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아가다가도 때때로 쉽게 무너지고 주저앉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타인을 쓰레기처럼 취급하곤 한다. 하지만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깊고 무게감 있는 하루를 살아가려면 잠시 나를 앉히고 손톱을 자를 시간을 충분히 주는 건 어떨까.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독일 수 있는 나라면,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 나아왔다고 격려해줄 수 있는 나라면, 세상 그 어떤 지지보다 든든할 것만 같다. 내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응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으리라.

남들처럼 가늘고 하얗고 부드러운 손과 손톱을 가지진 않았지만 누가 뭐라 하든 이제는 나의 투박한 손을 사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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