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음식
“그리고 물이라도 들 듯이 샛노랗디샛노란 산골 마가슬 볕에 눈이 시울도록
샛노랗고 샛노란 햇기장 쌀을 주무르며
기장쌀을 기장차떡이 좋고 기장차랍이 좋고 기장감주가 좋고 그리고 기장쌀로 쑨
호박죽은 맛도 있는 것을 생각하며 나는 기쁘다.”
- 월림장 백석 -
기장쌀은 없지만 속이 샛노랗디샛노란 단호박이 집에 있다.
주로 전자레인지에 간편하게 쪄 먹지만, 고생을 사서 하고 싶은 날이 있다.
맛있는 호박죽을 생각니 백석 시인처럼 나도 기쁘다.
신데렐라가 호박마차를 타고,
할로윈데이에는 호박에 유령 얼굴을 조각해서 등(jack-o' lantern)으로 쓰는 것을 보면
호박은 서양에서도 오랫동안 친근한 식재료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호박나물, 호박김치, 호박쌈, 호박전, 호박찜, 호박떡, 호박범벅, 호박죽 등등
잎, 줄기, 열매, 씨할 것 없이 알차게 이용해왔다.
"호박(횡재,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다."는 말은
밭에 제대로 된 자리 하나 내어주지 않아도 성격 좋게 생글거리며
담장이나 공터에서도 탐스럽게 잘 큰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얼마나 흔하면 '호박씨 깐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호박같이 생겼다.'라고 했나 싶다.
그런 괄시에도 부기를 빼주며, 비타민이 많아서 감기를 막아주고, 중풍을 예방하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더니
요즘에는 다이어트에 좋고, 노화를 더디게 하고,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를 예방하니, 피부를 맑게 해준다 하여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대견하다.
호박죽은 처음 만들어본다.
썰고, 찌고, 으깨고, 집에 없는 찹쌀까지 검색되자 낙담했지만
호박죽에 대한 달짝지근한 식탐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낸다.
있는 것만 가지고 내 식대로 해보기로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레시피와 조금 다르지만,
식탐과 귀차니즘이 만들어낸 나만의 레시피이다.
'물이라도 들 듯이 샛노랗디샛노란' 웃음이 번지는 맛이다.
<재료>
1) 주재료: 단호박 1통, 물 6컵, 설탕 2T, 소금 한 꼬집
<!!>
1) 찹쌀
주로 찹쌀을 넣는데, 그 이유는 곡물을 넣어 식사 대용으로 충분하도록 하려는 것이고, 더불어 호박에 이뇨작용하는 성분이 많아서 이를 절충하려는 의도가 있단다. 간식 대용 또는 다이어트 식사일 경우, 찹쌀을 과감히 제외해도 된단다.
2) 소금
단맛에 짠맛을 더하면 더욱 달게 느껴지는 원리이다. 수박에 소금을 조금 찍어 먹으면 단맛이 더 강하고, 고구마 먹을 때 김치를 함께 먹으면 김치의 짭짤한 맛 덕분에 고구마의 단맛을 더 풍부하게 느끼는 것과 같다.
<방법>
1) 단호박을 잘 씻고 반을 갈라서, 쓴맛이 나는 씨는 빼고, 전자레인지에서 5~7분간 찐다.
이번에는 단호박 통을 그릇으로 사용하려고, 1/3 지점에서 반을 갈라 뚜껑을 만들었다.
2) 한 김 식힌 후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호박과 물 1~2컵을 믹서기에 넣고 곱게 간다.
단호박 그릇 형태를 유지하려고 숟가락으로 과육만 파냈다.
'먼저 호박 껍질을 벗기고, 작게 썰어 다듬은 후 찌라'는 레시피가 일반적이지만
과육이 딱딱한 생호박을 다루기란 쉽지 않다.
1)-2) 번처럼 먼저 찐 후, 껍질과 크기를 다듬는 것이 좋다.
3) 냄비에 2) 번과 나머지 물(4~5컵), 설탕 2T,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중 불에서 끓인다.
센 불에서는 죽이 튀어 오를 수 있으니, 중 불에서 '데운다' 또는 '졸인다'는 느낌으로 오래 끓인다.
중간에 타거나 눌어붙지 않도록 몇 번 저어준다.
먹기 좋은 농도가 되면 불을 끈다.
<!!>
나는 설탕을 적게 넣은 편이니, 입맛에 맞게 조절하면 좋겠다.
호박은 잘 익을수록 당분이 많아진단다. 이 당분이 소화 흡수가 잘 돼서 특히 회복기 환자나 위장이 약한 사람이 영양분을 섭취하기에 제격이란다. 입에 단 것이 몸에도 좋다니! 호박이 스스로 만들어낸 건강한 단맛을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찹쌀을 넣는 등의 일반 레시피와 비교해보면
매우 간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맛은 더 좋다.
보통 좋은 것은 쉽게 얻기 어렵다던데
그런 고단한 인생에 넝쿨째 굴러들어 온 레시피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