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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영 Jun 01. 2017

#03. 우유의 환생, 코티지 치즈

생활음식

음식 남기면 죽은 후에 다 먹어야 한다는 말을 믿던 때가 있다.

근데 벌처럼 들려야 하는 그 이야기가 나쁘게만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은 없다.

'못 먹어서 문제지 먹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울까?

죽으면 영겁의 시간이 이어진다는데 심심하지 않고 좋겠네'하면서

남겨둔 음식들을 보며 나중에 보자고 작게 인사도 했으니!

실은 별로 남기는 일도 없었다.

그만 먹으란 말은 좀 들었다.


그런데 회사 근처로 분가를 하고 나니 달랐다.

 사과 하나를 꺼내 아침으로 먹으려 다가도 껍질 깔 시간이 없어서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고 출근하는 일이 잦았다.

집에서 과일이 썩어 나가더니, 계란 하나 유통기한 내에 먹기 쉽지 않았다.

죽은 후에 먹을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버리는 식재료 때문에 마음이 꽤 불편했다.


이 와중에도 마트만 가면 흰 우유 앞에서 머뭇거린다.

거품 키스처럼 유리잔에 하얀 자욱을 남기는 흰 우유에게 늘 물욕을 느낀다.

식욕 대신 물욕을 느낀다는 것은

거의 한 모금 정도만 덜어낸 우유가 유통기한에 다다라서(또는 살짝 넘겨서)

폐기 위기에 자주 처해진다는 의미다.


얼굴 마사지 말고

우유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봤다.

우유로 만드는 생치즈에는 식욕이 샘솟는다.




<재료>

1) 주재료: 우유 1L, 소금 한 꼬집(보통 1ts 넣어라고 한다), 레몬즙 5큰술 (식초로 대체 가능하지만, 식초 특유의 향이 살짝 날 수 있다. 생레몬즙을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시판 레몬즙이면 충분하다. 시판 레몬즙은 하나 사두면 이모저모 유용하다.)

<!!>
일반적인 코티지 치즈 맛을 내려면, 생크림을 500ml 정도(즉, 우유:생크림 = 2:1) 넣는다.
하지만 생크림이 집에 있을 리 없는 나는 과감히 생략한다. 아무렴 살도 덜 찔 것 같다.
생크림을 넣으면 질감도 맛도 부드럽다. 생략하면 포슬포슬하고 훨씬 담백하다.


<만드는 법>

1) 우유(와 생크림), 분량의 소금과 레몬즙을 냄비에 넣고,

재료가 섞이도록 2-3회만 저어준 후,  

 최대한 약한 불에서 데운다는 느낌으로 약 15분 정도 끓인다.

 <!!>
- 먼저 우유(와 생크림), 분량의 소금을 넣고 데운다는 느낌으로 끓인 후,
- 냄비 가장자리에는 거품, 우유 위에는 막이 생긴다 싶을 때,
   레몬즙(또는 식초)을 넣고 재료가 섞이도록 한 두 번만 휙 젓고 약 10분간 더 끓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러 번 해본 결과, 위에서 처럼 한 번에 모두 넣고 끓여도 된다.


2) 절대 젓지 않아야 몽글몽글 순두부 같은 것(치즈)이 만들어진다.

흰 우유가 이 순두부 같은 것과 투명한 누런물(유청)로 변하면 완료다.


3) 면포에 걸러 치즈만 남기고 면포 입구를 (묶듯이) 비틀어 꼬아서 채반에 올리고

냉장고에서 반나절 정도 굳힌다. 무거운 것으로 괴어 두면 좀 더 단단해진다.

<!!>
- 면포가 없으면 일회용 다시팩, 커피 원두 필터, 깨끗한 거즈 수건, 면행주 등으로 대체한다.
- 채반은 물을 더 빼내려는 의도라서, 굳히기 전에 최대한 물을 많이 짜내고, 밥그릇에 넣어두곤 한다.
- 굳힐 때 괴어두는 '무거운 것'으로, 주로 간장 종지, 소주컵 등을 사용한다.

포슬포슬 담백한 생치즈는

빵이며, 샐러드 등에 곁들이기 좋지만

그냥 먹어도 맛있다.


가끔 치즈를 면포에 넣고 굳히기 전 단계에서

블루베리나 산딸기 등 집에 있는 과일을 넣기도 한다.

허브 등을 잘게 다져서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치즈를 만들기 위해 우유를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남는 우유를 재활용하는 멋진 방법을 알고 있으므로

흰 우유에 대한 물욕을 마음껏 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치즈의 이름에 대해 논란이 있는 듯하다.

리코타 치즈와 코티지 치즈를 혼용하고 있었는데, 생크림 첨가 여부로 구분하기도 하고, 위와 같은 방법은 코티지 치즈라고 확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결국 두 방법의 중간쯤이라고 보는 것' 이다. 원래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아보면,

코티지 치즈(cottage cheese)는 우유의 단백질을 응고시킬 수 있는 스타터 박테리아, 레린을 첨가해 커드(curd _응고된 하얀 순두부 같은 부분)와 유청(whey _누런 물 부분)으로 분리한 뒤, 커드의 수분을 제거, 숙성시키지 않은 후레시 치즈이고, 리코타 치즈(ricotta cheese)는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에 응고제를 넣고 다시 끓여, 위에 뜬 덩어리를 응고시켜 만든 치즈이다.(유청을 그냥 버리면 하수시설과 강을 망가뜨려서 고안해낸 방법이란다.) 우리의 방법은 유청(누런 물) 대신 커드(하얀 덩어리)를 먹으니 코티지 치즈이지만 레몬즙을 넣어서 원형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런 사연을 알아는 두되,

결과적으로는 '코티지 치즈'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이름 이야기가 나오니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궁금하다.

대부분의 치즈 이름은 처음 만들어진 지역의 이름으로 불린다는데, 코티지와 리코타는 다르다.

"코티지(cottage)"는 '오두막, 즉 이탈리아 시골의 작은집(cottage)'에서 버터 만들고 남은 우유를 사용해 만들어진데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단다. 한편, "리코타(ricotta)"는 치즈를 만들고 남은 것을 재활용했다고 해서, 이탈리아어로 '새로 다시 익혔다' 또는 '새로 만들었다'는 뜻이란다.

 

근데 치즈는 어떻게 먹게 됐을까?

가장 유력한 설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우유를 운반하던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이 발견했다는 것인데, 동물 위장에 우유를 응고시키는 성분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6,000년 전부터 먹기 시작했고,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발전시켰단다. 우리나라에는 약 200년 전에 들어왔는데, 우유를 많이 먹지 않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반응이 없다가 피자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조금씩 생겼다고 한다. 1966년 벨기에에서 온 지정환 신부가 전북 임실에 치즈를 생산한 것이 우리나라 치즈 생산의 시작이라고 한다.

알고자 하면 치즈의 역사며 구분 그리고 지역별 특색까지 심오하다.


평소에 치즈를 많이 먹는 식성은 아니지만

유럽 또는 미주 여행을 가면

다 먹지도 못하는 치즈를 한 덩이씩 사곤 한다.

보통 블루치즈 아니면 브리치즈이다.

이런 것들을 결국 남기게 되어서 어디선가 꼭 먹을 수 있다면 (또는 먹어야 한다면)

그건 분명히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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