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국경 도시 바를러를 가다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by So young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국경이 네덜란드와 벨기에 두 나라 사이에 있다.

네덜란드 쪽의 이름은 바를 나스 (Baale-Nassau), 벨기에 쪽 이름은 바를하톡 (Baarle-Hertog).

국경선이 어찌나 복잡한 지 방금 전 네덜란드 빵집을 지나왔는데, 선크림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어오니 어느새 벨기에에 와 있다. 거리 바닥 곳곳엔 국경을 표시한 작은 십자 무늬가 여기저기 눈에 띄고, 한 발은 네덜란드 쪽에, 다른 발은 벨기에 쪽에 가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심지어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선 가운데 서 있는 집도 있다.


지도를 펼쳐 보면, 국경과 국경이 그저 복잡하게 꼬여서 맞닿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네덜란드 속에 고립되어 있는 듯 보이는 벨기에, 다시 말해 네덜란드 편에서 볼 때는 자기 나라 한가운데 들어와 말뚝을 박고 있는 듯한 다른 나라, 벨기에 쪽에서 볼 때는 자기 나라를 가기 위해 다른 나라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이상한 모양새이다.

이상한 나라에 온 신기함에 도취되어 들떠 있던 것도 잠시, 나와 딸은 무거운 배낭을 좀 내리고 점심을 먹을 장소를 물색하던 중 다시 팽팽한 긴장 속에 빠지고 말았다.

난 배낭이 무거웠을 뿐이고, 딸의 배낭은 더 무거웠을 뿐이고, 나는 좀 앉아 쉬고 싶었을 뿐이고 딸도 그랬을 뿐이었을 텐데, 딸의 싸늘한 눈초리와 냉랭한 말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나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은 또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예쁜 팬케이크 가게에 들어 가 멋진 팬케이크를 주문했지만, 케이크가 맛있을 리 없었다.

난 가게에 남아 배낭을 지키며 좀 더 쉬기로 하고, 딸은 두 나라 국경 사이에 서 있는 집을 보고 오기로 하면서 간신히 냉전의 현장을 정리했다.


쓴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내 감정과 마주 앉은 나. 이리저리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생각과 감정들을 바라보다 지칠 때쯤 다시 깨닫게 된다. 이 국경선만큼이나 복잡하게 꼬여 있는 우리의 마음이란 얼마나 어이없이 우리를 옭아매고 동시에 허망한 것인지를.

내 마음의 지도는 아마 그릴 수 조차 없을 거란 생각을 하니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내 마음은 너의 마음과 같지 않고, 너의 마음 또한 나의 마음 같지 않고, 때론 복잡하게 맞닿아 있으며, 때론 서로의 마음속 한가운데에 버젓이 들어가 있기도 하며, 때론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한 마음, 마음들…


이방인에게는 이상하게만 보이는 이 국경이 이 곳 국경 마을 사람들에겐 특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국경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지만, 그들은 거기 국경이 있는지 조차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듯 무심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땅 위에 그어 놓은 선은 선일뿐, 그들의 삶과는 무관한 무엇인 듯싶었다. 그들은 국경 위에서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쓴 커피를 다 마실 때쯤 딸이 돌아왔다.

내 마음의 국경을, 나와 타인의 국경을 그저 바라 볼 수만 있다면 평화로울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버스를 타고 벨기에의 안트워프(Antwerpen)로 향했다.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에서 어리바리하는 사이, 나는 내리고 딸은 그대로 버스를 타고 가버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둘 사이에 충분한 싸인을 나눌 사이도 없이 나의 핸드폰까지 딸이 들고 가 버린 상황. 난 꼼짝없이 정류장을 지키며 멀리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오는 딸의 모습을 바라본다. 마주 보니 그제서 웃음이 나온다.


나는 네덜란드에, 띨은 벨기에에 있다. 하지만, 둘의 거리는 불과 50 cm에 불과하다. 우리의 마음도 같지 않을까?
국경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처럼 될 수만 있다면..
보기에도 예쁜 팬케익의 맛은... .
탐스러운 수국이 여기저기 피어있는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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