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벨기에의 베네치아 브뤼헤 (Brugge)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by So young

여행 사흘째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여행은 어느 정도 탄력이 붙어가고 있었다. 헨트 역에서 브뤼헤 역에 도착하자마자 잽싸게 코인 로커에 가방부터 밀어 넣었다. 다음 여행지인 브뤼셀로 가기 위해 어차피 다시 와야 할 곳이었다.

이제 뭔가 여행자다운 마음의 여유를 한껏 즐길 태세를 갖추었다고 할까? 몸도 마음도 한결 느긋해진 느낌이다. 어쩌면 이 아름다운 도시 브뤼헤가 우리의 마음을 쓰다듬어 준 덕분이기도 한 것 같다.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쾌청했다. 도시는 아름다웠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브뤼헤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답게 눈을 두는 모든 곳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발 길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오랜 역사를 지닌 레이스 제품이 즐비한 골목이다. 그 순백의 순수함에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기념품으로 덥석 구입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안구 정화' 내지 마음의 정화로 만족했다. 하지만 골목 어귀의 초콜릿 가게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단 맛, 쓴 맛, 술맛이 든 다양한 초콜릿을 하나씩 베어 무니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마차와 트램, 자전거가 평화롭게 어울린 거리,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벨포트와 아기자기한 길드의 건물들이 인상적인 마르크트 광장.. 이 모든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기분은 고조되고 우리는 내친김에 뱃놀이까지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벨기에의 베네치아’, ‘북유럽의 베네치아’라는 별칭답게 도시의 곳곳을 감아 흐르는 운하. 알고 보니 이 운하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운하가 아니었다. 먼 옛날 큰 해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폐허로 변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물을 도시 안으로 더 끌어들여 배로 교역하기에 편리한 항구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운하에 토사가 퇴적되어 항구로서의 명성을 잃기도 했지만, 19세기경에 다시 운하 재생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과연 인간의 역사는 불행을 극복하는 역사에 다름 아니다.


그 운하를 따라 중세에 세워진 집들과, 바실리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등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보트에 올랐다.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집들의 벽에는 세워진 연대가 적혀있기도 했는데, 대부분 1600년대에서 1800년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지금도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참 대단하고 대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집들 하나하나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딸과 나는 배 위에서 즐거운 농담을 나눈다. “저기 저런 집에 한번 살아 볼까?” “1층엔 카페, 2층엔 작업실을 꾸미면 좋겠다. 그치?”


브뤼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여성 생활 공동체 ‘베긴회 수녀원’.

운하가 감싸 흐르는 수도원 입구엔 흰 백조들이 머물고, 13세기에 지어졌다는 유럽풍의 하얗고 소박한 건물과 푸른 숲, 그리고 수도원 안의 성당 안에서는 수녀들의 맑고 고운 찬송가가 조용히 울려 퍼지던 곳.

조용히 해줄 것을 요청하는 입구의 표지가 아니더라도 절로 경건해지는 느낌.

고요해진 마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우리는 브뤼셀로 떠나는 기차에 올랐다.


레이스 숍이 즐비한 골목에 들어서니 그 순백의 색깔만큼이나 마음이 깨끗해 지는 기분이다.
초콜릿 한 봉지로 충분히 행복한 마음
계단식 지붕이 인상적인 중세 유럽의 건물과 노천 카페들
웅장한 고딕식 건물, 플랑드르 주청사
브뤼헤에서 가장 높은 종탑. 벨포트.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종소리가 그립다.
이탈리아에는 베네치아가 있고, 벨기에에도 베네치아가 있다. 바로 브뤼헤이다.


베긴회 수녀원 입구
새 둥지 모양이지만 새 집이라 보기엔 아무래도 크다. 기도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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