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브뤼셀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경. 브뤼셀 역에서 우리를 픽업해서 자신의 숙소로 안내해 줄 파란색 옷의 남자를 만나기로 했는데, 보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브뤼셀 역은 둘로 나뉘어 있는데, 하나는 브뤼셀 미디(Brussel-Zuid/Midi), 다른 하나는 브뤼셀 센트랄 (Brussel Centraal). 브뤼셀이라는 글자만 보고 미디 역에서 황급히 내린 우리는 거기서 센트랄 역까지는 5시간을 더 가야 한다는 경찰의 ‘농담 따먹기’를 뒤로 한 채, 다급해진 마음을 안고 다시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했고, 마침내 브루노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주인이 집을 내어주고 자신은 빠지는 숙소였다면, 브뤼셀에서는 주인인 브루노가 옆방에 머무는 스튜디오 같은 공간의 집이다. 혼자였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외간 남자와 한 집에서, 그것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잘 생각은 안 했겠지만, 우리는 용감한 2인조 엄마와 딸이고, 더구나 집주인은 당당하게 자신이 게이임을 소개 글에 올린 상태라 우려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바라던 데로 게이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무엇보다 숙소는 역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고, 야경이 특히 유명한 대광장 (그랑 플리스)과 중앙대로에서도 가까운 곳이었다. 게다가 사진 속의 실내 모습은 화보를 찍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과연, 브루노의 집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했고, 게이 특유의 섬세함과 깔끔한 접대가 마음에 들었다.
우선 미리 준비해 둔 시내 지도와 관광안내 책자 등을 펼쳐 놓고 간단한 브리핑을 해 주었다. 가 볼만한 곳과 먹거리 등에 대한 정보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집에 들어온 표시로 신발은 어디에 벗어두면 좋은지, 부엌의 식기들은 쓰고 난 뒤 닦지 말고 그냥 두는 편이 자신이 정리하기에 더 편하다든지, 이야기는 어느새 그동안 거쳐 간 당황스러웠던 손님들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부터 세계 어느 곳이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고충 중의 하나인 비싼 생활비 이야기까지 아줌마들(?)의 수다로 이어졌다.
자, 브뤼셀에 왔으니 이제 ‘환각의 밤’을 즐겨야 할 때가 되었다.
숙소를 나와 시끌벅적한 ‘먹자골목’을 지나 먼저 도착한 곳은 ”그랑 폴리스”. 광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황홀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빅토르 위고의 칭송을 빌리지 않더라도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이 광장에는 15세기에 지어진 높은 첨탑이 있는 고딕 양식의 시 청사 건물을 비롯해서, 17세기에 건립된 공공건물들이 모여 있다. 밤의 조명은 이 멋진 건축물에 은빛 신비를 더하고, 우리는 또 한 번 술도 마시기 전에 환각 상태에 빠져들었다.
브뤼셀에는 맥주 애호가들에게 꽤 유명한 ‘델리리움 카페’가 있다. 분홍 코끼리 간판을 내 건 이 가게가 있는 골목 안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카페 내부 또한 발 디딜 틈 없이 젊은 열기로 가득하다. 헨트의 고요한 맥주 집과는 180도 다른 신세계가 펼쳐지던 곳. 당황스러운 기분도 잠시, 난 어느새 이 시끌시끌한 젊음의 공간에 슬쩍 끼어 앉아 각 종 맥주의 맛에 취해가고 있었다. 사실은 젊은 기분에 취했다고 하는 편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