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벼룩시장과 비치 펍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by So young

딸의 고급 정보에 의하면, 암스테르담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꽤 큰 규모의 벼룩시장(Flea Market)이 열린다고 했다. 네덜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딸은 이 이벤트에 나를 데려갈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마침내 어느 맑은 주말 아침, 암스테르담 센트랄 역 앞에서 무료로 연계되는 배를 타고 도착한 벼룩시장, 아이 할렌 (Ij-Hallen). 일단 그 규모가 엄청나다. 잡다한 살림살이에서부터 멋진 고가구들, 상상 밖의 수집품들까지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에게는 필요 없거나 쓰임이 없는 물건이 누군가 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되어 팔려 나가고, 단 돈 1유로에 건지는 기쁨과, 쓰던 물건이 버려지지 않고 재활용된다는 뿌듯함까지.

쓰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는 물건들이 우리 집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얼마나 많이 쌓여 있을까? 가끔 집 정리나 서랍 정리를 하면서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집 안에 널려 있거나 서랍 속에, 혹은 장롱 속에 박혀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물건들을 전부 밖으로 꺼내 놓으면 어떤 모습일지.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함께 나눠 쓰고도 넘치는 양이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은 늘 ‘결핍’으로 허덕인다. 가진 사람들도, 못 가진 사람들도.

싸고 좋은 물건은 눈에 띄었지만, 그리고 개중엔 정말 데리고 오고 싶은 애들이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눈요기로 끝내야 했다. 우리는 긴 여행을 남겨 두고 있고, 되도록 가볍게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장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코스가 있게 마련이다. 바로, 군것질. 사실 나는 이 젯밥에 더 관심이 있었다.

벼룩시장 바로 옆의 비치 펍, '플랙(Pllek)’. 매니저의 설명으로는 네덜란드어로 ‘Plek’은 영어로 ‘Place’를 의미한다고 한다. ‘플렉’이 됐든, ‘플레이스’가 됐든, 멋진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공장 같은 실내 인테리어와 해변 카페 분위기의 테라스가 모래사장으로까지 이어진 거대한 펍이다.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차림으로, 제멋대로 뒹굴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마냥 자유로워 보인다.

2층에서 이 모든 것을 조망하며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다가 모두가 햇빛 쪽으로, 햇빛 쪽으로만 찾아다니는 이 곳 사람들처럼 나도 테라스로, 해변으로 다가가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곳 사람들만큼 뭔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태양을 멀리하는 습성 때문인 것 같다.

이 곳에서 나처럼 챙 넓은 모자를 쓰는 행위는 불법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언제부터 태양을 피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돌아오는 길.

집에 남은 된장찌개에 곁들일 간단한 먹거리를 사기 위해 장을 보러 갔다.

네덜란드에 오면, 가끔 동네 슈퍼에서 비싸게 사 먹던 유럽 치즈를 싼 값에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치즈 입문은 쉽지가 않다. 종류는 너무 다양하고, 네덜란드어로 된 표지의 글자와 숫자들은 그저 암호에 불과할 뿐, 점원도 치즈의 달인은 아닌 눈치다. 우리는 숫자와 맛의 조합을 상상하며 두 가지 치즈를 골랐다. 하나는 그저 그렇고, 하나는 너무 짜다. 우리가 된장의 맛을 알고 구분하는데 일생이 걸리듯, 치즈를 알기 위해서는 반평생은 유럽에서 살아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젊을 때는 외국 여행을 하면서 몇 날 며칠을 빵만 먹어도 굳이 밥 생각이 나질 않았는데, 이제는 2-3일 빵을 먹으면 밥 생각이 솔솔 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여기서 흔히 파는 '안남미'라는 쌀은 왠지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고 다 먹고도 뭔가 섭섭한 느낌마저 든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라고 했던가? 결국 난 안남미로 차진 우리 쌀의 풍미를 살리는 법을 ‘발명’했는데, 여기에 특허료도 받지 않고 그 내용을 공개하고자 한다.


① 쌀과 물의 비율을 1:1.5로 잡아서 한 시간 정도 불려 둔다. (보통 1:1로 잡는 우리 밥 보다 물의 양이 많다. 이 황금비율을 알아내는 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② 뚜껑을 덮고 처음에는 조금 센 불로 끓인다.

③ 큰 거품이 일며 끓기 시작하면 바로 약한 불로 줄인다.

④ 물이 다 줄면 밥을 살살 핀 뒤에, 뚜껑을 다시 닫고 약한 불로 조금 더 뜸을 들인다.


암스테르담 벼룩시장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암스테르담 센트랄 역 바로 앞에서 무료로 연계된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벼룩시장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2층에서 내려다본 비치 펍의 모습

'태양'과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 잠시 함께 누워본다.

차 진 쌀밥 한 그릇에, 된장찌개와 김치, 그리고 산나물 한 접시. 우리에겐 이게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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