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암스테르담에 가면..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by So young

암스테르담에 가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몇 군데 있다고 들었다. 우선,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 라익스 뮤지움 (Rijks Museum)", 첫 방문지로 이미 다녀온, "반 고흐 박물관", 고흐와 함께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인 렘브란트가 살았던 "렘브란트 하우스",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와 가족이 나치를 피해 숨어 살았던 "안네 프랑크 하우스 (Anne Frank House)", 그리고 무릇 모든 성인들의 관심거리인 "섹스 뮤지움".


서울로 치자면 더위가 절정일 7월 하순으로 접어드는 시점이지만, 이곳은 23, 24도 안팎의 쾌적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특히 비가 내리는 궂은날엔 우리나라 초가을 같은 한기마저 느끼게 하는 여름 날씨다. 나에겐 안성맞춤, 더없이 고마운 날씨다.

비가 간간이 내리는 아침, 따뜻하고 편안한 옷과 신발로 나름의 무장을 하고, 간식거리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사실 온종일 대규모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는 일은 고된 노동이다. 국립 미술관을 혼자서 천천히 돌아본 뒤, 저녁에는 딸과 함께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재회할 곳은, 오후 4시 "렘브란트 하우스" 앞.


예상을 못한 일은 아니지만, 역시나 딸의 핸드폰은 불통이었다. 최신 모바일폰의 혜택을 과감히 포기한 채 생활하는 딸의 노력에 나 역시 어느 정도 공감은 하는 바이지만, 꼭 통해야 할 때 불통 상태에 놓이게 되면 정말 분통 터지는 노릇이다.

연락이 닿지 않는 딸을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엣칭 체험 클래스’ 시간은 아쉽게도 놓쳐 버리고, 폐관 시간 직전에 간신히 맞춰 도착한 딸과 서둘러 램브란트 하우스로 돌진.


모진 가난과 병마로 고생스럽게 살다 간 고흐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삶을 산 렘브란트. 개인 작업실은 물론, 미술수업을 위해 마련된 아뜰리에, 직접 예술품을 전시하고 판매를 하기 위해 상인들을 접대하던 고 품격 응접실과, 따뜻한 이부자리와 음식을 준비해 주던 하녀의 방까지, 그의 집은 오늘의 예술가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다 갖춘 모습이다.

‘아, 예술가도 이렇게 살 수 있(었) 구나’, ‘예술가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혹은, ‘예술혼이란 가난이나 결핍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구나’, 한 발 나아가 ‘풍요 속의 예술은 더 좋구나’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코스는"섹스 뮤지움". 혼자서 찾아가기에는 오히려 민망할 것 같은 생각에 동지를 불러들인 셈인데, 괜히 딸과 같이 가자고 한 건 아닐까 내심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사실, 딸과 이 정도는 허물이 없는 사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둘이 손을 잡고 구경할 만한 내용은 아닌 듯했다.

섹스에 대한 금기와 터부를 모두 깨려야 깰 수 없는 것이 우리 세대의 한계라면, 나의 다음 세대만큼은 나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당당한 성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나의 어머니가 이 말을 들으신다면 망측하다고 펄쩍 뛰시겠지만, ‘성과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어머니보다는 내가, 나보다는 나의 딸이 더 솔직하고, 따라서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안네 프랑크 하우스". 소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고 가슴에 품었을 "안네의 일기"가 쓰인 곳이다. 날은 저물어 가고, 바람은 거세게 부는데, 마지막 입장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기다림’이란 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듯,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모차까지 유유히 행렬을 이루고 있으니, 우리도 기다릴 밖에. 얌전히.

"안네의 일기"는 내 어린 시절의 비밀일기 같은 것이다. 안네가 다락방에 숨어서 썼다는 일기를 나의 일기장과 비교해 보며, 나 또한 비밀스러운 꿈을 꾸곤 했던 아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기에, 그 다락방을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칠흑의 어둠 속에서, 두려움 속에서, 작은 일기장 하나에 의지해 꿈을 키웠던 가여운 한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 듯 보듬어 안아 주고 싶은 작고 고운 소녀, 안네.


13살 무렵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른 즈음까지 열심히 썼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내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아이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안네는 작가가 되는 꿈을 키운 것이 분명하지만, 난 그렇다고 문학소녀도 아니었다. 난 혹시 철학소녀였었나? 난 왜 그토록 쓰는 일에 매달렸을까? 그 이후로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일기장 수 십 권은 벽장 구석 어딘가에 지금도 박혀있다.

내가 80살쯤 되었을 때, 밖으로 걸음을 더 이상 옮기기 힘든 그런 나이가 되었을 때쯤, 한 번 꺼내서 읽어 볼 생각이다. 내가 누구였는지 그때는 확실히 알 수 있을까...



16세기에서 17세기 중반까지 이 시대 예술가들에게 특별히 각광을 받았던 주제, ‘꽃’. 식물학과 외래 식물에 대한 지식의 발전과 함께, 아름다움의 영원한 대명사로, 한 편 삶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소재로, 많은 작품이 남아있다. -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미술관 전경

빨간 들창문과 초록색 대문이 대조를 이루며 예쁘다. '1606년'에 세워졌다는 명패도 보인다. - 렘브란트 하우스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는 유머와 위트가 있다. 그것은 ‘여유’의 다른 이름일까?


'19금'이라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 - 섹스 뮤지움 입구

'안네 프랑크 하우스'로 돌고 돌아가는 길. 끝도 보이지 않는 긴 줄, 그러나 모두 그저 느긋하다.

안네가 미쳐 다 이루지 못한 꿈들은 우리에게 아직 '기회'로 남아있다.

매거진의 이전글24. 벼룩시장과 비치 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