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누구나 실천 가능한 커뮤니티 리더십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그리고 그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상황을 정말로 겪어보지 않는 이상 그 막막함을 뼛속 깊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특히 자신의 월급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식솔이 있는 경우 일자리가 없는 상황은 말도 못할 고통이다.
나는 IMF 외환위기 시절에 졸업했다. 거기에 더해 멀쩡히 다니던 정규직을 박차고 나와 결혼생활 15년 내내 비정규직 예술인으로 살고 있는 남편과 두 아이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물론 남편은 생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도 않았고, 아이들 가정교육에 소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는 그 누구도 피해가기 어렵다.
남편은 간헐적으로 일을 따내어 단기 계약에 의한 노동(예술 활동)을 한다. 그래서 수입도 간헐적이다. 어떨 때는 많이 벌고, 어떨 때는 아예 수입이 없다. 많이 벌 땐 행복하고, 적게 벌 땐 불안하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많이 벌 때도 행복하지 않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어떨 때는 바쁘고 어떨 때는 한가하다. 한가한 기간이 길어지면 무료해진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이때 작은 가게, 작은 사업이라도 해볼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시작해도 망하는 가게와 사업체가 한두 개가 아닌데, 이렇게 즉흥적으로 시작하면 100% 망한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남편은 IMF 외환위기 때 아버지의 사업이 쫄딱 망해 가세가 급격히 기우는 것을 경험했기에 그런 유혹에 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 청년들은 자의반 타의반 창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취업이 안 되니 일단 무엇이라도 하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플랫폼 전성시대의 이면...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
남편은 자신의 예술 활동 영역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렇게 들쭉날쭉한 상황에서도 멘탈을 지키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멘탈 관리에는 규칙적인 노동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계약과 계약 사이에 생기는 시간을 규칙적인 노동으로 채우기로 했다. 나 또한 노동자의 삶을 직접 체험하면 예술의 깊이가 훨씬 깊어질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남편은 온갖 종류의 노동을 시도해 본 뒤, 쿠팡 플렉스라는 택배 노동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일한만큼의 수입을 챙겼다. 자신의 차로 배달하는 형태라 쿠팡 집하장에 각양각색의 차들이 모여들었다. 예상과는 달리 고가의 외제차를 몰고온 배달원들도 많아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두세 달 지나 쿠팡 플렉스의 지원자가 10만 명이 넘어서자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쿠팡 플렉스의 택배 노동자들이 배달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배달 단가가 하염없이 떨어졌다. 그마저도 없어서 못하는 지원자들의 원성으로 단톡방은 연일 시끄러웠다. 그리고 쿠팡은 4대 보험 보장은커녕, 사소한 고객의 불만에도 택배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했다.
나는 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 새로운 일자리는 매우 소수의 운 좋은 사람이 차지할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은 언저리로 내몰린다. 쿠팡 플렉스는 그 한 예에 불과하다. 지금 전 세계는 신기술의 발달로 생긴 공유경제의 분배 문제로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로버트 아이쉬(Robert Aish)는 공유경제를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share-the-scraps economy)’라고 부른다. 그만큼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한 플랫폼을 가진 사업주에 비해 인간 노동자의 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이다. 벌이뿐만이 아니다. 인권, 노동권 등 모든 면에서 부스러기처럼 연약해진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의 50%, 실업자로 살 지도...>
일자리가 사라진 미래 세계를 피상적으로만 볼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의 생생한 경험 덕분에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남편이 쿠팡 플렉스에서 만난 동료 중에는 아이 둘, 셋 딸린 가장도 많았다. 이들이 4대 보험도 없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계속 줄어드는 임금이지만, 이거라도 붙들며 살아가다가 사고라도 생기면 그는, 그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더 낳으라고 무작정 등을 떠밀면 안 된다. 취업이 안 되는 청년들에게 무슨 일이든 하라고 재촉만 해서도 안 된다. 또한, 지금 취업이 되었다고 이 문제에 대해 모른 채 해서도 안 된다.
앞으로 30년간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 중 50%를 대체할 것이다. 기성세대의 앞으로 30년도 문제지만, 앞으로 사회생활을 해야 할 지금의 아이들도 문제다. 지금의 아이들 중 50%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한 채 평생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견뎌낼 만큼 멘탈이 충분히 강한가? 물론 이런 상황을 해결할 뚜렷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현실을 직시하고 한 발 한 발 함께 나가는 수밖에.
언제든 누구나 실천 가능한 커뮤니티 리더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