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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Aug 06. 2017

두근두근 첫 수업

요리학교 시작하다

 드디어 첫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기대 반, 걱정 반, 더하기 약간의 흥분.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이 분이 바로 도노스티아의 걸출한 요리사들을 길러낸 루이스 이리사르 옹입니다. 지금은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로 연로하심은 어쩔 수 없지만, 반짝이는 눈빛은 여전하세요.




 학교는 '사무실-강의실-조리실-제과실' 딱 이렇게 4 분할된 정육면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매일 실습으로 더러워지기 십상일 텐데, 정말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어요.




 조리복을 받았습니다. 초록색 자수로 학교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빵모자-깨끗하고 구김 없는 흰 재킷-검은색의 줄무늬 바지-미끄럼 방지 조리화-깨끗하고 구김 없는 앞치마'로 이리사르 학생 룩의 완성입니다. 하나라도 어긋날 시에는 조리실에 들어올 수 없다는 선생님의 신신당부가 있었습니다.




 올해 신입생은 모두 28명, 스페인 각지와 콜롬비아, 브라질, 멕시코,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대부분 갓 스물을 넘긴 젊은이들입니다. 저같이 다른 일을 하다가 요리를 배우고자 하는 늙은 학생들도 몇몇 눈에 띕니다. 그나마 올해는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라 왠지 안심입니다. 


 이리사르 교장 선생님은 늙은이의 충고라는 겸손한 언급을 덧붙이시며, 언제나 요리의 기본부터 충실하게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스페인은 경제위기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요리사로서 활동할 기회를 세계 어디서든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실력을 증명해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푸근한 말씀이 지루한 훈화를 예상했던 저의 마음에 콕콕 박혔습니다. 2년 후 졸업식 때, 연세에 걸맞게 정신도 없고 수다스러우신 우리 교장 선생님은 신입생 환영회로 착각하시고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다는 재밌는 일화가 있어요. 


 주요 교수진은 두 분입니다. 이리사르 교장님의 오른팔이자 산 세바스티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발 호세초, 올해 첫 부임한 호텔에서 경력을 쌓고 슬로푸드 등 대안 식문화 운동에 관심이 많은 턱수염 페데리코. 이외에도 특별 수업에는 현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분야의 초청 강사님들이 오신다고 합니다. 학교 일과는 오전/오후는 레스토랑에서 실습,  오후/저녁에는 수업(실습과 이론을 번갈아가며)으로 이루어집니다.



 첫 실습은 정말 긴장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불, 칼, 전기 등 위험 요소들이 많은 주방환경에서 여러 사람이 정해진 시간 안에 체계적으로 일해야 하니 규율이 엄격하더군요. 이제 갓 스물이 된 망나니 같은 반 아이들을 주방 규칙에 순순히 따르도록 해야 하니 더욱 그런 듯했습니다. 조리실의 구조와 각종 집기들의 위치 및 사용법, 수업 준비 및 정리법, 주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페데리코 선생님도 다소 긴장이 되셨는지, 갑자기 칼을 휙 떨어뜨리기도 하셨어요. 지금도 되새기는 소중한 원칙들입니다.


- 칼은 이동시 항상 아래를 향하도록 한다.   

- 칼질을 할 때는 검지와 중지의 두 번째 마디로 칼의 위치를 항상 감지하고, 엄지가 칼날 쪽으로 나오지 않도록 항상 유의한다.

- 도마 위는 항상 청결을 유지한다. 항상 채소나 과일의 껍질을 버리는 별도의 바구니를 준비한다.

- 개인 행주로는 젖은 손을 닦기보다는 뜨거운 손잡이를 잡을 때 사용한다. 젖은 행주는 열의 전도가 빨라 손을 데기 십상이다.

- 수업 준비 시에, 그리들과 가스레인지를 점화해 놓는다. (가정용이랑 다르게 자동 점화가 되지 않아요.)

- 부엌에서 베이는 일은 다반사다. 큰일이 아니니 항상 유의하되, 과감히 도전해라.


 그리고선 바로 스페인의 소울푸드,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Tortilla de patatas), 감자 오믈렛을 만들었습니다. 후에 다른 요리사 분께 들은 바로는 기본을 중시하는 일본의 요리학교에서는 이렇게 수업 첫날부터 요리를 하는 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요. 몇 달 동안 칼 갈고, 주방과 재료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은 후에 비로소 실습을 할 수 있대요. 과감하게 실전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게 이 곳 스타일인가 봅니다. 여태껏 복권도 한 장 안사고 점도 안보는, 조심성 많고 위험과 불확실성은 절대 감수하지 못하는 제가 여기서 뭘 하는 걸까요?  


 우선, 몇 개의 화구에 그리들이 동시에 타오르는 불 앞에서 더워서 죽을 뻔했습니다. 스페인도 주방도 다 낯선 가운데 선생님과 친구들 말도 못 알아듣겠고, 동시에 해본 적 없는 요리까지 재빨리 해야 하니 정신이 혼미해지더군요. 그 두꺼운 토르티야는 왜 안전하게 접시를 대고 뒤집으면 안 되고 팬 째로 뒤집으라 하는지, 뒤집는 순간 절로 '으헙' 하고 기합이 튀어나왔습니다.



 각양각색의 토르티야를 잔뜩 부쳐놓고 재빨리 맛보라 합니다. 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 모양도 맛이 다 다릅니다. 손맛이라고 해야겠지요? 요리사가 해내야 할 몫입니다. 첫 수업의 긴장을 잠시 풀고 허겁지겁 먹어치웁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더군요. 엄청난 양의 설거지와 청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칠칠치 못한 저희가 깨끗했던 주방을 처참히 더럽혔으니 원 상태로 되돌려놓아야 합니다. 불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가스레인지도 밑판까지 다 들어내서 닦아야 합니다. 대용량 요리를 위한 냄비와 프라이팬은 엄청나게 무거웠지요. 조리대와 냉장고도 세제로 구석구석 닦고 항균처리까지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생각 없이 개수대에 던져놓은 칼은 왜 이리 많고 날카로운지. 게다가 발로 밟아야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는 생전 처음 봅니다. 나중엔 잘 밟게 되었는데 이날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온 몸으로 힘을 쓰다가 몸살에 잠을 못 이뤘네요.  


 조금 더 담대하게,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토르티야 일거예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고, 간식이나 야식으로도 먹고, 도시락으로도 싸가고, 집에서도 카페나 바에서도 고급 식당에서도 이를 재해석한 음식을 내고, 누가 누가 토르티야를 잘 만드나 수도 없이 많은 대회가 열리니까 말입니다. 스페인 레스토랑에 실습 나가서 가장 먼저 배운 요리도 달걀 16개로 만드는 대형 토르티야였습니다.

 토르띠야는 토르타(torta)의 축소형이에요. 동그랗다는 의미입니다. 수녀원에서 만드는 동그란 빵이나 둥근 치즈, 멕시코의 둥글넓적한 샌드위치도 그렇게 불러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남미에서 먹는 밀이나 옥수수로 만든 전병도 동그란 형태라서 토르티야라고 부르는 것이다. 중남미에서는 요리를 싸 먹는 전병이고, 스페인에서는 주로 오믈렛을 뜻한다. 


'원파인디너' 박현린 대표님이 스타일링 해주시고  홍기웅 작가님이 찍어주셨어요.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 (Tortilla de Patatas)


재료 (18cm 프라이팬 분량)

감자 3개, 양파 1개, 소금 1작은술, 달걀 6개, 올리브유 200ml 


과정

감자와 양파는 나박썬다. (2*2*0.3cm)

팬에 소금 간한 감자와 양파를 물러질 때까지 볶는다. 체에 받혀 기름을 뺀다.

달걀을 풀어 감자와 양파를 넣고, 소금 간 한다.

잘 달군 프라이팬에 걸러둔 기름을 약간 두르고 달걀물을 붓고 팬을 흔들면서, 주걱으로 원을 그리며 익힌다.

또르띠야 밑부분이 익으면 접시를 대고 뒤집는다. 다시 팬에 옮겨 담아 반대편을 익힌다.


달걀물을 완전히 익히지 않고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 현지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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