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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Aug 06. 2017

먹는 게 제일 중요한 사람들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서 요리 인생을 시작하다 


 스페인에서 요리를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엄청나게 무모한 결정이었지요. 모두 제 결정을 의아해하고 걱정했지요. 지금껏 해왔던 공부와 일, 가족과 집을 다 두고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인 저는 이상하게도 선택의 무게가 잘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계가 기대되었습니다. 도대체 해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지 않겠느냐, 아니면 돌아오자 생각했어요. 아마도 떠나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커서 이성이 마비되었나 봅니다. 한국에서 살던 서른 넘은 사무직 여자가 갑자기 외국에서 요리를 배우고 식당에서 일하겠다는 게 당최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요? 당시 저는 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자 그럼, 스페인 어느 지역, 어느 학교로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지요. 그런데 고민이라고 하기에 무색하게 쉽게 마음을 정했어요. 언젠가 잡지에서 보고 기억해둔 학교 이름이 있었어요. 루이스 이리사르 요리학교(Escuela de Cocina Luis Irizar). 용케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게다가 그 학교는 스페인 도시 중에서도 잠시 살아본 마드리드 다음으로 좋아했던 산 세바스티안에 있대요. 몇 년 전 여행에서 잠시 방문한 산 세바스티안은 '정열의 스페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곳이었어요. 스페인의 쨍한 햇살이 베일에 가린 듯 차분함이 전해지는 바닷가 도시였지요. 주저 없이 학교 홈페이지를 검색해서 모집 요강을 살펴본 후,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스페인어를 조금 알았던 게 참 다행으로 느껴졌습니다.


 학교 측에서 나이가 많다고(학생 권장 나이 20~24세), 혼자 공부하러 온다고(가족이랑 떨어져 살다가 포기하고 귀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결정을 유보한 게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케케묵은 스페인어의 기억을 떠올리며 열 개도 넘는 질문지를 정성스레 작성하여, 원어민 친구들의 검사까지 받았더랬죠. 떨리는 마음으로 한 달 넘게 기다리다, 드디어 승낙을 얻어냈습니다. 위의 편지가 그때 받은 합격증명서예요.


 이쯤에서 학교 소개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설립자 루이스 이 리사 르 옹은 스페인에서도 미식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바스크 지방의 요리계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1930년 쿠바 아바나에서 출생하여, 파리의 로열 몽소 레스토랑, 런던 힐튼 호텔 등 당대 세계 요식업의 중심지에서 요리사로 활동하고 스페인 요리사로서는 첫 미슐랭 별점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의 '누벨 퀴진'과 같은 시기에 태동한 '뉴 바스크 퀴진' 운동을 이끈 선구자이기도 하였지요. 1970년대 후안 마리 아르작, 페드로 수비하나 등 현재 산 세바스티안을 미식의 성지로 끌어올린 1세대 요리사들과 함께 새로운 바스크 요리를 표방하며 공동의 연구와 홍보활동으로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후 후학 형성에 힘써, 1993년에 본인의 이름을 내건 요리학교를 설립하여 현재 스페인과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요리사를 배출하고 있지요.

 

 학교가 자리한 산 세바스티안은 세계에서 단위면적 대비 미슐랭 별점이 가장 많은 세 도시 중 한 곳입니다.(나머지 두 도시는 리옹과 교토) 인구 20만에 서울 면적의 1/10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도시는 음식 사랑이 유난합니다. 칸타브리아 해에서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과 피레네 산맥 서부의 양고기, 치즈, 버섯과 같은 임산물들, 근처 나바라 평원의 풍성한 농산물과 경계를 맞댄 라리오하 지역의 유명한 포도주 등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풍부한 재료들이 모여듭니다. 역사적으로는 19세기 말 당시 스페인 왕인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여름마다 휴양차 들리면서, 귀족들이 함께 몰려들면서 호사스러운 그들의 식생활이 도입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시민 주권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부르주아들이 적극적으로 근대 상공업을 도입하면서 축적된 부가 식문화 융성의 기반을 마련해주었죠. 1939년부터 1975년까지 프랑코 독재 시기를 거치며 탄압받던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이 정체성을 식문화에서도 찾았기에 바스크 전통 요리가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졌어요.


 훌륭한 루이스 이 리사 르 옹의 가르침과 유서 깊은 산 세바스티안의 미식 유산은 요리사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배움과 훈련은 실제 주방에서 일어났지요. 첫 수업부터 2년 간을 반나절은 학교에서, 반나절은 현지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뭉둑한 감자 필러에도 기어이 손을 베는 제가 실제 요리를 배우고 주방 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오늘은 스페인의 전형적인 아침식사를 소개하려고 해요. 너무 간단한 레시피지만, 바쁜 아침일수록 간단하게 준비해야 좋잖아요. 판 콘 토마테. 'bread with tomato'라는 뜻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으로도, 간식으로도, 안주로도, 점심 저녁 식사의 곁들임으로도 먹어요. 우리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김치와 밥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요? 심지어 호텔의 조식 뷔페에서도 빠지지 않더라고요. 스페인의 아침이 그리울 때 만들어요. 


훌륭한 조언자이자 조력자인 동생 신성하님이 찍어주셨습니다.


판 콘 토마테 (Pan con Tomate)


재료

바게트 4조각, 토마토 1개, 마늘 1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1큰술, 소금, 다진 허브(선택), 하몽(선택)


과정

토마토는 반을 잘라 씨를 제거하고 강판에 간다. 씨를 걷어내야 신 맛이 빠진다. 소금 간 하고 올리브유를 섞어둔다. 마늘은 반으로 자른다.

오븐, 토스터, 팬 등을 사용해 바게트를 굽는다. 

바게트에 마늘을 문댄다. 눅눅해지지 않을 정도로 얇게 발라 향만 입힌다.

바게트의 바삭함이 살도록 토마토소스를 얇게 발라 마무리한다. 허브나 하몽을 올려도 좋다.


잘 익은 후에 수확한 달고 신맛이 풍부한 토마토를 사용하세요. 그런 토마토를 구하기 어렵다면 단 맛이 강한 대추토마토에 식초를 약간 더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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