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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Aug 06. 2017

대체, 왜, 스페인, 요리

서른 넘어 스페인에서 요리사가 된 여자

 도대체 왜?

 요리는 갑자기?

 하필 스페인이야?

 일이랑 공부는 어떻게 하고?

 가족들은 뭐래?


 매번 듣는 질문이지만 항상 우물쭈물합니다. 어떻게 그런 무모한 결정을 무심히 내릴 수 있었을까요. 그저 살아온 날들 중에서 이런 저런 단서를 모아볼 뿐입니다.


 예전엔 문화예술계에서 일했었어요.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선 운좋게 스페인의 국제예술행사 준비조직에 들어갔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공연과 문화시설, 예술교육 기획일을 줄곧 했어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도록 돕는게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무대 안팎에서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부러웠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남의 손과 발로만 일하니 성에 차지 않았나봐요.


 게다가 일하는 동안 기운이 많이 빠졌습니다. 실무를 맡은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에서 일의 본래 가치는 번번히 좌절되었습니다. 직장에서 정권이 바뀌고선 예술가들이 집단으로 부당 해고되는 사태가 일어났요. 부랴부랴 노조도 결성하고 세상에 부당함을 알리려 노력했지만 해고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기관장의 눈밖에 난 저는 결국 회사를 나왔어요. 다음엔 지역의 아트센터를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오랜기간 연구하고 계획했던 아트센터는 사적 이권에 결부되어 결국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이후 시작한 아이들을 위한 예술교육은 기관장과 정치인의 치적 사업으로 본질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어요. 저와 동료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무력감과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제 힘으로 찬찬히 쌓아올리는 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싶었어요.


 그 무렵 요리를 시작했어요. 제 깜냥으로 다룰만한 세계였습니다. 칼질도 못하고 간도 못맞췄지만 레시피 순서대로 만들다보면 결과물이 생겼어요. 그것으로 사람들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맛있다고 미소짓거나 뭔 맛이래 찡그리는 순간에 온전히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한 접시 뒤에 있는 제 시간들과 수고들이 사람 안으로 녹아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그에게 필요한 위안과 영양을 주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제 자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요리는 제 삶에 변화를 가져왔어요. 우선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무엇을 누가 어떻게 키워서 이 자리까지 왔을까 궁금해졌어요. 대형마트에 덜 가기로 하고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했어요. 유전자 변형작물과 종자의 획일화, 지속가능한 농업과 동물복지 등의 이슈에 관심이 생겼어요. 다양한 식재료를 통해 도시 생활에서 잊기 쉬운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절기마다 가장 맛있고 풍성한 것들을 즐기면서, 삶이 다채로워졌어요. 자연과 제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엇보다 요리를 하는 동안은 제 마음이 단정해졌어요. 불안과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맛있는 향기, 요란한 소리, 선명한 색, 뜨거운 열기에 집중하게 되니까요.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왜 스페인이냐. 그건 어느 책제목처럼 그저 운명이에요.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 번듯한 삶을 사는게 인생목표였던 저는 한번도 제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했어요. 심지어 전공도 제가 가고싶었던 학교에 합격 가능한 학과라 정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렇게 멍하게 살아도 별 번민이 없었는데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니 미치겠더라고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어요. 불안해서 죽을것만 같았습니다. 그 때 도망치듯 스페인에 갔습니다. 거기서 숨통이 좀 틔었나봐요. 스페인도 결코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지만 저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제 발로 도시를 누비면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다시 길을 찾고 그렇게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돌아와선 다시 예전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조금은 더 성숙해진 저는 다시 기운을 내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스페인으로 돌아갔나봐요.


 이런 변변찮은 이유로, 저는 서른 넘어 요리를 배우러 스페인에 갔습니다. 그리고 저를 발견했어요. 유치하고 고집세고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요리사를요.


 스페인에서의 시간은 '스패니시 아파트먼트'처럼 신나고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글에 덧붙이기 위해 당시 사진을 열어보는데, 대부분 느낌이 서글퍼요. 바스크 지역 날씨가 그렇기도 하지만 제 마음 상태를 반영하기도 하네요. 몸과 마음, 눈물이 말랐지만 다시 채워질 비움이었습니다. 


***


 2012년에 요리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초창기 레시피는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기 전에 인터넷 검색과 책으로 익혀 올린 것들이라 좀 엉성해요. 지금은 같은 요리도 좀 더 나은 레시피를 소개할 수 있지요.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만드는 요리 중에 가스파초라는 시원한 토마토 수프가 있어요. 더운 여름인 지금 해먹기 가장 좋은 요리지요. 주재료인 토마토도 가장 맛있을 때이고요.


훌륭한 조언자이자 조력자인 동생 신성하님이 찍어주셨습니다.


가스파초 Gazpacho 


재료

잘익은 토마토 250g, 양파 1/4개, 마늘 1/4쪽, 오이 50g, 피망 40g, 식빵 1쪽,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25ml, 와인 식초 1.5큰술, 소금, 굵은 소금, 하몽과 삶은계란/다진오이나 토마토/과일과 허브(선택)


과정

토마토는 믹서기에 들어갈 정도로 굵게 썰어요. 양파와 마늘, 오이, 피망도 같은 크기로 썰어서 소금과 와인 식초를 넣고 냉장에서 1시간 정도 재워요.

믹서기로 토마토와 채소 재운 것을 곱게 갑니다. 체에 한번 걸러도 좋아요. 올리브유를 조금씩 넣고, 모자란 간을 합니다.

그릇에 가스파초를 담은 후, 다진 하몽과 삶은 계란으로 장식해요.


수박, 딸기, 체리 등 과일을 함께 넣으면 풍미가 더 화려해집니다. 위 사진의 가스파초에는 딸기를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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