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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Aug 13. 2019

우리에겐 U턴이 있다

이 길이 아닌가벼?


<2019.  8. 5>                                                                                                                                                                                                                                                                                                                                       

10년 동안의 장롱면허를 탈출하고자 애쓰는 중이다. 여덟 번의 (돈 내는) 연수를 마치고 혼자서 운전한 지 3개월이 되었다,지만 실제로는 집에서 사무실만 왔다 갔다 한 게 전부였다. 주차까지 15분이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왕복해야 30분가량(다행이라면 그거라도 매일 했다는 거). 다른 곳도 운전해보고 싶었지만 7월 말까지 출판사로 넘겨야 하는 원고가 발목을 잡았다. 사무실 외에 다른 곳을 갈 시간도 없었고, 일부러 운전 연습씩이나 할 경황이 없었다. 내가 원체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고 원고가 더 중한 일이기도 했다. 


 드디어, 원고를 넘기고. 마침내, 운전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났다. 지난주에 동네 친구와 남편에게 코치를 받으며 집에서 서울성모병원을 왕복했다. 총 3번이다. 나도 아부지도 서울성모병원을 다니기 때문에 자주 가는 편이다. 특히 그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했다. 문제는 아직 내비게이션을 잘 못 봐서 길을 외워야 한다는 점. 무엇보다 다른 길로 빠지기 전 어디쯤에서 미리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한 데서 헤맬 확률 200 퍼센트.    


오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혼자서 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고백하자면 운전석에 앉기 전까지 갈까 말까 망설였다. 자신이 없었다. 길은 대충 외우긴 했는데 무사히 갈 수 있을는지. 일단은 차에 달린 내비를 켰다. 나의 미천한 기억력에만 의지할 수 없으므로 보조 수단이다. 이 내비로 말할 것 같으면 화면이 커서 초보가 보기에는 편하다. 그런데 업데이트가 안 된다고 주변에서는 다들 핸드폰 내비 앱이 낫단다. 티맵이나 카카오 내비 같은 것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무리. 화면이 너무 작아서 말이다. 우선은 내비에 신경 쓰지 않고 외운 대로 가기로 했다. 


 오, 예상보다 차선 변경을 잘하고 있었다. 내 생각엔 능숙한 차선 변경이 운전의 팔 할을 차지하는 것 같다. 쭉 직진하다가 우회전 한 번 하고, 다시 직진하다가 우면산 터널로 들어가면 거의 완벽인데. 우면산 터널 입구 직전에 좌회전 차선으로 붙어야 하는데 어디쯤인지 헷갈린다. 남편은 도로에 써져 있으니 그걸 보고 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런 게 잘 보이면 내가 초보겠어? 얼추 다 온 거 같았다. 왼쪽 차선으로 옮겼다. 헉, 그 길은 굴다리 같은 터널을 통해 양재 사거리로 가는 길이었다. 굴다리 들어가면서 바로 앞에 우면산 터널로 빠지는 길이 보였다. 지나치게 미리 차선 변경을 한 것이다. 침착하게 잘 봤으면 되었을 텐데.  나는 "어떡해! 어떡해! 잘 못 왔어!"를 외쳤다. 





 이때 신경도 안 쓰던 내비가 말을 걸었다. "유턴을 하세요." 아 참으로 훌륭한 내비 님이 아니신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차분하고 여상한 말투는 나를 안심시켰다. 실시간 정보가 안 된다던 (그래서 왕무시했던) 내비가 동아줄이었다. 급하니까 내비가 잘 보이더라고. 네네, 시키는 대로 유턴을 했다. 계속 직진을 지시하던 내비가 한 번 더 유턴을 하란다. 네네, 다시 유턴을 했다. 저 앞에 우면산 터널이 보인다. 살았다! 터널을 나와 병원까지는 무조건 직진이다. 구름다리 아래를 지나가면 맨 오른쪽 차선으로 붙다가 병원 안으로 우회전하면 끝.   


 '아, 이건 모험이다!'


 아프리카 여행에 버금가는 모험이 바로 초보의 운전인 것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지금보다 적어도 세 곱절쯤은 굳건하게 자신을 믿어줘야 한다(나는 늘 그런 점이 부족하다). 생각보다 나는 운전을 썩 잘 해내고 있었다. 하루에 30분이라도 석 달 동안 꾸준히 운전을 했고 3번이나 이 길을 연습했다. 그걸 의심하고 조급해하던 '또 다른 나'만 아니었어도 길을 잘못 들지 않았을 것을.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다시 길을 찾은 건 정말 잘했다.  한편 길을 잘못 든 덕분에 확실히 길을 알았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여행을 떠올렸다. 아니 저절로 떠올랐다. 처음 홀로 여행을 결심했을 때, 두려웠다. 나름 초보 수준은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도 두려웠다. 서로 의지하고 돌보았던 아들과 함께하던 여행에서 혼자 하는 여행으로 갈아타야 했다. 아들은 다 컸고 대학을 갔고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할 시점이었다(벌써 5년 전 일이다). 막상 여행이 시작되자 두려움은 어처구니없이 해결되었다. 몸에 각인된 그동안의 (여행) 경험은 나를 재빠르게 노련한 여행자 모드로 바꾸어 주었다. 첫 번째 홀로 여행부터 깨달았다. 나는 홀로 여행을 사랑하게 될 운명인 것을. 막상 무엇을 행동할 때보다 그걸 결심하기까지가 더 두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햇빛 아래 놓아둔 얼음 조각처럼 두려움은 행동을 함으로써 사르르 녹아 버린다.


 옆에서 길을 알려주는 사람을 태우고 가면 마음이 편안하다, 마치 동행 여행처럼. 의지할 데가 있으므로. 부족한 실력이지만 엉뚱한 길에서 헤매지는 않는다. 자신이 없으면 이렇게 두세 번 연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얼추 마음과 몸이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다음에는 혼자 해보는 거다. 이때는 무조건 자신을 믿어야 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하지 말고. 나 외에 나를 믿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쩔 거야. 나라도 나를 믿어야지. 사실 좀 못 해도 괜찮은 게 우리에겐 'U턴'이 있더라고요. 이 길이 아닌가벼 싶으면 되돌아오면 그뿐인 것을.     


 이제는 집까지 아니 사무실까지 무사히 돌아오는 일이 남았다. 헤매다 길을 찾은 게 오히려 자신감을 주었다. 그래, 할 수 있어! 역시 과천까지 수월하게 돌아왔다. 주차를 하고 나니 웃음이 터진다. 아이고, 모험 한 번 잘했네!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아이를 낳는다지만 나의 출산이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것처럼. 누구나 군대를 간다지만 누구에게나 군대가 가벼운 시절이 아닌 것처럼. 누구나 운전을 한다지만 누구에게나 운전이 쉽지는 않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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