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율 Aug 23. 2019

나이로 내는 용기

<2019. 8. 9>                                                                                                                                                                                                                                                                                                                                    나는 운전이나 운동, 춤 같이 몸으로 하는 행위라면 대부분 서툴다. 타고나기를 그러해서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인데도 종종 자신을 원망했다). 중학교 무용 시간에도, 문화센터 차밍댄스 반에서도 안무를 외우는 게 그리 안 되더라고. 걷기 말고는 할 줄 아는 운동도 없어. 운전 면허도 남편 등쌀에 간신히 턱걸이로 땄다. 그러고도 10년 동안 장롱에만 모셔 두었다. 이런 내가 오십 넘어 운전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할머니도 하는 운전이라지만 나같은 사람에겐 아프리카 여행만큼이나 엄청난 사건이라니까!


달리 해석하면 이제야 용기를 낸다. 젊었을 적에 못 낸 용기를 외려 나이 들고서야 낸다. 거 참 신기하지. 보통 젊은이들이 용감하다지만 내 경우엔 '나이듦'으로써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나이를 먹어서야 용기를 내는 부류인 것이다(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여행도 마흔에, 첫 책 출간과 영어 공부도 마흔 일곱에, 강의는 마흔 아홉에, 운전은 쉰 둘에 시작했다. 운전이 익숙해지면 내년에는 (또 하나의 숙원사업인) 수영을 배우련다(평생 물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물론, 뭐든 젊을 적에 시작하는 게 낫다. 그런 편이 아마도 빨리, 쉽게 배울 확률이 높다. 만약 그게 잘 안 되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나이 들어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이가 주는 험난함과 고단함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씁쓸한 것들을 적잖이 맛본 뒤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에도 미덕은 있다. 뭐랄까. 배짱이랄까, 뒷심이랄까. 나는 원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겁이 많고 내성적인, 행동하기 전에 생각이 많은, 그러나 안에는 뭔가 뜨거운 것이 감춰져 있는. 젊어서는 드러나지 않던(혹은 드러낼 수 없었던) 내면의 작은 조각들이 나이 들면서 단단해지고 모양을 갖추게 되었달까. 다행인 건 예전보다 스스로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나이로 내는 용기에는 수업료가 든다. 속도 면에서 매우 느리다. 그래서 남들과 비교하면 무조건 손해다. 백 퍼센트 진다. 백전백패.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비교하면 지는 거다. 남들과는 말고 단,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건 괜찮다. 어제보다 요만큼이라도 나아졌으면 이긴다. 백전백승. 무조건 이기는 거다. 나는 그냥 속 편하게 생각한다. 남들이 한 달 걸리면 나도 한 달 걸리겠지? 노노. 영민한 남들이 한 달 걸렸으면 둔한 나는 두 달이나 세 달 쯤 잡으면 되겠지(또는 그 이상도 상관없다). 이게 나의 마인드. 천천히 간다고 하늘에 벌금내는 것도 아닌데. '느림'이라는 수업료를 감당할 깜냥이면 된다. 


병을 경험하고부터 생긴 모토가 있다. 열심히 말고 일곱심히 쯤만 하고 살자. 물론 이건 나에게만 한정인 생각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를 테지. 백인백색. 그동안 일곱심히, 여섯심히 살아와서 앞으로는 열심히 살아야 할 사람도 있겠지. 나는 딱 일곱심히만 살려고 한다. 그런데 버릇이 들어 자꾸 열심히 하려고 해서 큰일이다. 흐흐흐. 브레이크 한 번 걸고 30 퍼센트의 여유는 남겨놓기. 딩가딩가~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겐 U턴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