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머리 위로 알록달록한 양산을 드리웠다.
서울성모병원 앞 횡단보도.
반대편 조달청 안의 조달약국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손으로는 내리쬐는 햇빛을 가렸는데 아마도 인상을 찌푸렸을 게다.
"같이 써요."
웬 할머니였다.
하얀 커트 머리를 하고서 양산을 내쪽으로 들이밀었다.
이런 무방비한 날 것의 친절이라니.
"아이구, 정말 고맙습니다."
"얼굴이 하얀데 햇빛은 뜨겁고, 같이 써요."
여름내 선크림도 안 바르고 화장도 안해서
절대 하얄 리가 없는 얼굴이지만.
오늘은 심지어 쌩얼인데.
빈 말 같은 진심어린 염려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어린 양아, 어쨌든 내 양산 안에 들어오너라~'
콩알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옛말이 이런 뜻이로구나.
내 양산을 나누겠다는 말 한마디.
찡그렸던 얼굴과 마음이 풀어졌다.
작은 양산, 아주 잠깐의 시간.
대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누구나 베풀 수 있는 온정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베풀지 않는 온정이었다.
스쳐 가는 낯선 이에게 양산을 절반 내어주는 것.
안쓰러움에 더해지는 도우려는 마음.
작은 행위 안에는 여러 겹의 선한 마음이 겹쳐져 있는 것이었다.
"어디까지 가셔요?"
"난 저~기 방배동에 가요. 어디 가는 길이우?"
"네, 전 요 앞 조달약국에 약 타러 가요."
그 말을 하는 사이에 횡단보도를 다 건넜다.
10초나 되었을까.
그러나 10초 간의 친절은,
호수 위에 떨어진 단풍처럼 내 마음을 물들였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요, 잘 가요~"
이분은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낯선 이에게 스스럼 없이 나누며,
그러고 나서는 잔잔한 얼굴로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누며.
나도 커서 양산을 나눠쓸 줄 아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작은 친절을 무심히 권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아니 지금부터 그렇게 살아야지.